지난해 1월 24일 우구어 자힌 바이오엔테크 최고경영자(CEO)는 국제학술지 랜싯에서 한 편의 논문을 읽었다. 중국 우한의 일가족 6명 사이에 번진 폐렴에 관한 보고였다. 사람 간 쉽게 전파된다는 내용도, 세계적으로 확산된다는 전망도 없었다. 그가 있던 독일에선 첫 환자도 나오지 않았던 때다. 하지만 자힌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신호로 판단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그는 아내인 외즐렘 튀레치 바이오엔테크 최고의학책임자(CMO)에게 중국에서 돌고 있는 이상한 질병을 이야기했다. 주말 내내 논문을 읽은 부부는 월요일(27일) 아침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번엔 다르다. 잠깐 지나갈 감염병이 아니다’는 내용이었다. 팬데믹 역사를 바꾼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시작된 순간이다.
자힌은 2008년 독일 마인츠에 바이오엔테크를 세웠다. 사람 세포를 공장처럼 활용하는 mRNA 기술로 암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목표는 유럽의 대형 제약사였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독일 바이오시밀러 회사인 헥살의 창업자 슈트륑만 형제는 달랐다. 창업 초기부터 수억유로를 바이오엔테크에 투입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미국 뉴욕의 시선은 싸늘했다. 2019년 자힌은 바이오엔테크의 나스닥시장 상장을 위해 월가를 찾았다. 위워크가 상장 문턱에서 좌절하고 미·중 무역전쟁이 전개되던 때다. 투자자들은 냉정했다. 실험용 mRNA 주사를 겨우 250명에게만 투여해본 회사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2억6400만달러로 예상했던 초기 조달액은 1억5000만달러로 떨어졌다. 상장 첫날 주가도 5% 하락했다. 그래도 동요는 없었다. 500명 넘는 과학자는 mRNA 치료제 개발에 집중했다.
코로나19가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전명 ‘광속(light speed)’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바이러스 유전자를 확보한 뒤 백신 후보물질을 10개 찾아내기까지 불과 48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후 바로 10개의 후보물질을 추가했다. 백신 개발에 나선 지 한 달 만에 얻은 성과다. 20개 후보물질 중에는 추후 코로나19 백신으로 허가받은 ‘BNT162b2’도 포함됐다.
자힌은 후보물질을 찾은 뒤 3월 화이자와 공동 개발을 선언했다. 8개월이 지난 11월 앨버트 불라 화이자 대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4만 명 대상 최종 임상에서 효능이 90%를 넘었다는 소식이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자힌은 이렇게 말했다.
“성공한 코로나19 백신이 없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결과를 들을 때까지 숨조차 쉬지 못했어요. 유레카. 생물학적 사실이 확인된 순간입니다.”
두 사람은 연구에 미쳐 있었다. 결혼식도 실험 가운을 입고 올렸다. 혼인신고 후 찾은 곳마저 연구실이었다. 실질적 연구 결실을 보기 위해 연구에 머물지 않고 창업을 했다. 자힌은 마인츠대 교수로 근무하던 2001년 아내와 함께 가니메드제약을 세웠다. 가니메드는 ‘노력을 통해 얻는다’는 의미의 터키어다.
자힌은 가니메드에서 나와 바이오엔테크를 세웠다. 튀레치는 2016년 가니메드가 아틀라스파마로 인수된 뒤 합류했다. 인수대금만 14억달러였다. 가니메드로 큰돈을 벌었지만 연구는 계속됐다. 암 백신 등 20개 넘는 후보물질을 발굴했다. 화이자, 게이츠재단 등에서 연구비도 지원받았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후 부부는 단숨에 억만장자가 됐다. 자힌의 자산가치는 660억달러(약 74조1900억원). 하지만 자힌은 운전면허조차 없다. 회사 근처의 작은 집에서 매일 산악자전거로 출퇴근한다. 화이자, 모더나 등의 대표가 주식을 매도했을 때도 자힌은 바이오엔테크 주식을 팔지 않았다. 그는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하는 이유”라며 “이유가 바뀌지 않는 한 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다음 목표는 암이다. 많은 암을 발견할 수 있는 진단법을 찾는 게 그의 바람이다. 자힌은 언젠가 암 완치 시대도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인터뷰를 통해 그에게 성공 비결을 물었다. 자힌은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한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결실을 보기 위해선 무엇이든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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