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흩트려 놓은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만남이 줄어들고 동선은 단순해졌다. 답답함이 늘어나고 생활은 움츠러들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자기 삶의 한 부분이 어디론가 싹둑 베어져 버린 듯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느낌의 크기에 비례해 코로나가 끝나면 인생에서 쓱 사라진 듯한 것들을 바로 채워 넣어야겠다는 바람 역시 강렬해진다. 더구나 이 상황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만들어졌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앞으로 코로나가 통제되고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 해외여행을 꼽았다. 코로나19로 경영의 어려움에 부닥친 항공사가 자구책으로 내놓은 무착륙 해외 비행 상품이 인기리에 매진된 것을 보면 여행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가늠하게 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여행을 갈망하는 걸까? 인류가 새로운 삶을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머나먼 곳으로 퍼져나간 것처럼 인간의 DNA에는 이동 본능이 깊숙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당장 먹거리를 찾아 짧은 거리지만 익숙지 않은 곳으로 가기도 하고, 아니면 호기심에 가득 차 현재의 생활을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로 기나긴 모험을 떠나기도 했다. 이 여정 속에서 새로운 시공간으로 인한 놀라움, 아름다움, 기쁨, 두려움, 슬픔, 자유로움, 사랑과 같은 감정을 원초적으로 느끼고, 이것이 깊게 각인돼 또 다른 여정으로 이어졌다.
남태평양 타히티로 간 고갱처럼 ‘우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가지고, 자아 성찰을 통해 알을 깨고 나온 자신을 경험했다. 이제 달과 화성 탐사가 본격화됐고, 언젠가 인간은 지구의 물리적 공간 한계를 극복하고 우주 저 너머 지평으로 발을 내디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우주 시공간에서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모든 것은 지금까지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의 한가운데 있는 지금, 당분간 예전처럼 여행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새로운 시공간의 경험에 있다. 자기 주변에서 미처 가보고 느끼지 못한 곳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새로운 시공간이다. 그곳은 우리에게 자신이 품고 있는 쉼의 느긋함과 삶의 힘을 넉넉히 줄 것이다. 이럴 땐 여럿의 왁자지껄함보다 킬리만자로 표범의 고독함이 더 좋다. 마스크를 꽉 낀 채 조심조심 절제하면서 인생의 풍부함을 채워나갔던 지금의 나를 훗날 뒤돌아보며 미소 지을 수 있게 열린 눈과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 보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