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백조의 낭만에 숨겨진 불굴의 의지

입력 2021-05-10 18:13   수정 2021-05-11 00:08



고전 발레의 정수 ‘백조의 호수’(사진). 이 작품을 떠올리면 새하얀 발레복을 입고 백조를 연기하는 발레리나들의 우아하고 섬세한 몸짓, 아름답고도 슬픈 러브 스토리가 머릿속을 스친다. 그리고 입가에 자연스럽게 한 멜로디가 맴돈다. 백조의 호수의 메인 테마곡 ‘정경’이다. 서정적이면서도 웅장한 선율로 백조의 호수를 세계적인 명작으로 만든 곡이다.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의 매니저였던 블라디미르 베기체프가 쓴 작품이다. 그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에게 작곡을 맡겼다. 차이콥스키는 이를 통해 발레 음악에 처음 도전하게 됐다. 현재 백조의 호수는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초연 당시엔 엄청난 혹평에 시달렸다. 이 작품뿐 아니라 차이콥스키의 대표곡 ‘피아노 협주곡 1번’도 처음엔 냉대를 받았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불굴의 의지로 영원히 기억될 선율을 만들어냈고, 러시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됐다.
음악에 모든 감정 담아낸 차이콥스키
그는 정부 관료였던 아버지 덕분에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도 보였다. 하지만 법률가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 뜻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법률학교에 진학했고, 19세에 법무성 서기가 됐다. 이 덕분에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점점 고민에 빠졌다.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관직을 내려두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했다. 늦게 음악을 시작했지만 실력을 인정받았다. 음악원장의 동생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으로부터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 자리도 제안받았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우수에 깃든 것처럼 쓸쓸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리고 점차 확장해 가며 격정적인 감정을 분출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벅찬 환희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이 변화와 확장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자연스럽고 세련됐다.

그런데 그 시대엔 이런 음악이 낯설었던 것일까. 당시 러시아에는 니콜라이 림스키고르사코프,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등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5인의 국민악파 작곡가의 음악이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차이콥스키도 초반엔 이들과 교류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프란츠 리스트, 리하르트 바그너 등 서유럽 음악을 접하며 두 양식을 결합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게 됐다.
시간의 무게를 견딘 명작의 탄생
그의 음악 인생은 늘 시작이 순탄치 않았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루빈스타인에게 헌정하려 했지만 그는 이 곡에 대해 혹평을 쏟아냈다. 몇몇 소절을 제외하고는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쓸 것을 제안했다. 차이콥스키는 크게 낙담했지만 자신만의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제안을 거부하고 리스트의 사위인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에게 원곡 그대로 헌정했다. 뷜로는 미국에서 이 곡을 선보였고 큰 성공을 거뒀다. 이를 알게 된 루빈스타인은 나중에 차이콥스키에게 연락해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이후 나온 그의 첫 발레 음악 백조의 호수 초연도 크게 실패했다. 음악이 발레의 보조 수단에 그치지 않고 전면에 부각될 정도로 웅장하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그는 충격으로 “다시는 발레 음악을 작곡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발레 음악을 잇달아 만들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의 사후 백조의 호수도 재평가받게 됐다.

그의 굴곡지고 격정적인 삶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시대의 명작은 항상 낯선 법. 그 시간을 인내하고 자신의 음악을 끝까지 지킨 차이콥스키와 같은 예술가가 결국 승리하는 것이 아닐까.
<hr >
‘7과 3의 예술’에서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큰 감동을 선사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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