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보석과 꽃으로 치장된 커다란 선글라스가 여인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 머리 위에는 선글라스만큼이나 화려한 왕관이 얹혀 있다. 한껏 꾸몄지만 여인의 미소는 어색하다. 붉은색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입술 사이로 드러난 치아 교정기가 불편한 느낌을 더한다. 왕관과 장신구 등 욕망을 상징하는 화려한 도상들이 돋보이는 김지희 작가(37·사진)의 ‘실드 스마일(Sealed Smile)’ 연작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김 작가의 실드 스마일 시리즈 신작 35점을 전시하는 개인전 ‘킵 샤이닝(Keep Shining)’이 열리고 있다. 작가는 욕망과 존재의 문제를 다룬 이 시리즈를 2008년부터 13년째 발표 중이다. 이미지는 화려하고 현대적이지만 그의 작품은 동양화로 분류된다. 섬세한 색감을 살리기 위해 한지 위에 전통 안료를 입혀 그렸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보석으로 장식된 선글라스다. 현대인이 욕망이라는 잣대로 세상을 보고, 세상은 개인을 겉으로 드러난 물질적 요소로만 평가하는 현실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교정기와 어색한 미소는 인간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스스로 가하는 억압을 상징한다. ‘봉인된 미소’ 혹은 ‘어색한 미소’를 뜻하는 시리즈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작가가 욕망을 비판의 대상으로만 보는 건 아니다. 적당한 욕망은 삶에 대한 의지와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보면 어색한 미소와 교정기는 행복을 거머쥐기 위해 인간이 쏟는 노력을 뜻한다. “지금이 비록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우리는 더 나아지려는 욕망 덕분에 또다시 내일을 향해 움직일 수 있지요. 그런 점에서 욕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신작들에는 이 같은 욕망의 긍정적인 측면이 강조돼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린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봄의 풀빛을 닮은 연두색 배경이 돋보이는 전시 대표작 ‘실드 스마일’은 크기가 가로 130㎝, 세로 163㎝에 이르는 대작이다. 소녀의 얼굴 뒤편에는 노란 장미와 색색의 나비가 날아다니고, 선글라스의 한쪽에는 ‘Keep Shining(계속 빛나라)’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팬데믹에 맞설 용기를 주는 격려다.
작가는 작품마다 다른 방식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보라색 배경의 작품에서는 선글라스 한쪽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문구를 영어로 적었다. 하늘색 배경 작품에 그려진 소녀는 왕관을 벗어던졌다. 그녀의 선글라스 한쪽에는 비가 갠 뒤 하늘에 뜬 무지개가 그려져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모티브로 한 작품에서는 소년의 한쪽 눈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작중 대사가, 다른 쪽 눈에는 작품 속 사막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어린왕자가 화자에게 삶이 아름다운 이유를 가르쳐 준 곳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실드 스마일 시리즈에서 선글라스만큼이나 중요한 소재가 교정기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교정기가 없는 작품들을 처음으로 선보였어요. 억압과 사회적인 기준에 대한 비판 대신 삶에 대한 희망과 자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성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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