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으로 보유세의 기초가 되는 공시가격이 오르고 있는 데다 정부가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을 높이면서 인상폭이 대폭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엔 집값이 5% 떨어져도 종부세를 더 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한 번에 공시가격을 수십~100% 상향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익명을 요청한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출신 인사는 “보유세는 소득에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올리더라도 천천히 올리는 게 조세정책의 기본”이라며 “세 부담을 강화해 집값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방향이 맞다 해도 문재인 정부는 속도 조절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과거 부동산 가격 급등 현상을 겪은 일본은 관련 제도를 한국과 다르게 운용하고 있다. 한국의 공시가격과 비슷한 주택평가액을 조사하지만 3년에 한 번만 한다. 매년 조사하면 집값 등락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과세표준 역시 평가액의 3분의 1만 반영해 주택 보유자의 부담을 낮춰주고 있다.
주택 보유자들은 공시가격 이의신청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조세저항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 접수된 공시가격 이의신청 건수는 총 4만9601건에 달했다. 지난해(3만7410건)보다 32.6% 늘어난 것으로, 2007년(5만6355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336건)과 비교하면 150배가량 폭증했다.
반면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진 사례는 전체의 5%(2485건)에 그쳤다. 공시가격이 최고 134% 올라 집단 이의신청을 낸 세종 호려울마을7단지의 한 입주민은 “공시가격이 1년 새 두 배로 오른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며 “이의신청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사실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내라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은 깜깜이 인상이 지속되면 1주택자와 연금생활자를 중심으로 거센 조세저항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에게 의뢰해 보유세를 계산한 결과 주택 가격대를 막론하고 시세가 상승하지 않아도 보유세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가 주택은 공정시장가액비율 인상까지 겹쳐 부담이 더 컸다. 종부세 과세표준을 정할 때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은 2018년 80%에서 해마다 5%포인트 올라 2022년 이후 100%가 된다.
올해 119만5000원을 내는 서울 성동구 세림 아파트(84㎡) 주인의 내년 보유세는 155만5000원으로 30만원 이상 오른다.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올해 공시가격 12억6300만원) 소유자도 내년 641만원가량을 보유세로 낼 것으로 점쳐졌다. 올해 457만원에서 40%, 지난해 325만원과 비교하면 약 두 배로 뛴 수준이다. 강남구 래미안대치팰리스(공시가격 23억7000만원) 보유세는 올해 1313만6000원에서 내년 1897만원, 2023년 2740만8000원 등 매년 44% 오른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감정평가학회에 의뢰해 분석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으로 인해 내년에 집값이 5% 내려도 종부세는 증가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시가격 인상과 공정시장가액비율 변동으로 세금을 더 걷는 행위는 ‘세금은 법률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조세법률주의를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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