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KDI 원장 선임 둘러싼 무수한 뒷말…홍장표 사양해야 마땅

입력 2021-05-10 17:51   수정 2021-05-11 01:51

한국개발연구원(KDI) 차기 원장에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처음 나온 건 지난 3월 중순께다. 원장 공모에 홍 전 수석이 지원한 것이 알려지면서였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 성장(소주성)’ 이론의 설계자다. 현 정부가 ‘자기편’밖에는 쓸 줄 모른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 해도 정치색이 뚜렷하고 무엇보다 명백히 실패한 정책 입안자를 한국의 대표 국책연구기관 수장에 앉히려 한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는 이들이 많다. KDI에 재직했던 원로 학자 19명이 공동성명을 통해 “망국적 경제정책 설계자가 KDI 수장으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하는 처사”라며 공개 반대했을 정도다.

이런 논란 탓인지 전임 원장이 3월 말 퇴임했지만 아직 후임을 못 정하고 있다. KDI 측은 일단 3배수로 압축된 홍 전 수석과 다른 두 명의 KDI 내부인사를 후보로 놓고 이달 말 이사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사회가 다가와서일까. 잠잠했던 홍 전 수석의 KDI행(行) 관련 얘기가 다시 돌고 있다. 이번엔 그가 속한 진보좌파 경제학자들 모임인 ‘학현학파’가 KDI의 성장 담론을 비판하고 나서면서다. 홍 전 수석과 함께 학현학파 주축으로 불리는 원승연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최근 한 논문에서 KDI가 2018년 발간한 ‘혁신성장의 길’이란 보고서를 정면 비판했다. 이런 움직임이 홍 전 수석의 KDI 원장 내정설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KDI는 지난 50여 년간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론적·정책적으로 뒷받침해 온 국내 최고 싱크탱크다. 정권 성향과 무관하게 연구 자율성이 보장됐기에 지금껏 그 권위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 KDI에 실패한 정책의 설계자를 수장으로 앉히려는 발상 자체가 민망하다. ‘소주성’이 경제에 끼친 후유증이 너무 커, 이젠 현 정부조차 그 말을 쓰기 꺼릴 정도다. 그러니 누군가 정권 말 ‘알박기’로 한자리 주겠다고 하면, 홍 전 수석 스스로 사양해야 마땅하다. 학자로서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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