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퍼트리는분들께. 의대생 한강 실종 같은 안타까운 사건은 매일 몇 건씩 일어납니다."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4월 25일 실종됐다가 엿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 모(22)씨 사건에 경찰이 총력을 다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실종 당시 손 씨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친구 A 씨와 A 씨 아버지가 9일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며 늑장 대응이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다른 사건의 조사가 늦어질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 경찰은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한강사건 같은 거'라는 제목으로 "매일 이런 사건이 몇 건씩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는 비공개가 원칙이다"라며 "매스컴 탔다고 해서 그때마다 일반 국민들한테 일일이 수사 진행 상황 보고해야 하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저 사건 맡은 형사팀은 온통 저 사건에 매달려 있을 텐데 퇴근도 못 하고 평소보다 꼼꼼히 살펴볼 것이다"라며 "그 팀에 배정받은 사건들은 기약 없이 뒤로 밀리는 것이고 그럼 뒤로 밀리는 사건들 CCTV나 블랙박스 지워지는 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그럼 다른 팀에서 확인하면 안 되냐고? 그럼 그 팀이 들고 있던 사건들은 또 뒤로 밀린다"며 "의대생 사망 사건은 매스컴 탔으니까 중요하고 다른 사건들은 주목받지 못했으니 별거 아닌 건가"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사람들이 흥미 가지는 건 이해하는데 아직 종결도 안 된 사건 이때다 싶어 경찰 물어뜯고 온갖 루머만 쫓아다니며 퍼 나르는 모습 보면 한숨 나온다"며 "퇴근 못 하는 수사과 직원들 알아주지도 않는데 주말 없이 고생하는 거 생각나서 속이 갑갑하다"고 적었다.
이에 같은 경찰청 내부 직원은 "담당자들이 제일 괴로울 듯. 죽을 맛일 거다 진짜"라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와 함께 "서초서에 이미 접수돼 진행되고 있던 사건들은 거의 올스톱됐을 텐데 그 피해자 눈물은 누가 닦아주나", "다들 얼른 이 사건 해결 안 하고 뭐하느냐고 하는데 이 사건 때문에 본인 사건이 밀리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언론을 안 탔으면 몰라도 이렇게 언론 탄 사건을 묵히는 게 가능할 것 같나. 칭찬은 둘째치고 밤까지 새면서 온갖 압박 다 받는 담당자들이 불쌍하다"라고도 했다.
경찰의 비공개 수사 원칙으로 인해 1차 부검 결과 등 일부 정보만 외부로 알려졌지만 손 씨 아버지 B 씨가 평소 운영해 왔던 블로그를 통해 제보를 받기도 하고 활발히 중간 상황 등을 제공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한강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사건은 이전에도 많았는데 유독 손 씨 사건에 국민들이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어째서일까.
일각에서는 손 씨가 의대 재학 중이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B 씨의 합리적이고 냉정한 태도를 요인으로 꼽는다. B 씨는 아들을 잃은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경찰을 향해 의혹을 제기하고 A 씨 측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풀리지 않는 의문점을 묻는다.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친구 A 씨(조사)는 10시간 넘었고, A 씨 아버지는 8시간에서 9시간 정도였다"며 "손 씨 시신 부검과 각종 자료 확보에 걸린 시간을 고려했을 때는 늦어진 게 아니다"라고 소환이 늦어졌다는 지적에 반박했다.
경찰은 아울러 A 씨 어머니 휴대전화를 확보해 포렌식 분석도 마쳤다.
경찰은 실종 당시 A 씨가 어머니와 통화한 기록이 있는 만큼, 구체적인 통화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임의제출 방식으로 휴대전화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A 씨는 실종 당일 새벽 3시 반쯤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해 손 씨가 취해서 잠들었는데, 깨울 수가 없다는 취지의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약 한 시간 뒤인 4시 반 홀로 귀가했다. 당시 손 씨의 휴대전화를 소지한 상태였다. A 씨의 아이폰은 현장 수색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친구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귀가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본인의 전화를 찾기 위해 전화를 걸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A 씨가 당일 신었던 신발을 버린 것으로 확인되자 가족이 운동화를 버리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한 뒤, 왜 신발을 버렸는지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
앞서 B 씨는 "A 씨 아버지에게 '아들과 만날 당시 신었던 신발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지만 즉시 '버렸다'는 답이 왔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손 씨가 실종된 한강공원 인근 폐쇄회로(CC)TV 54대와 차량 133대의 블랙박스 등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 외에도 또 다른 의미 있는 제보를 받아 정밀 분석하고 있다며, 손 씨 행적 재구성에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손 씨 시신의 부검을 의뢰해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정확한 부검 결과는 이달 중순께 나올 것으로 보인다.
손 씨 아버지는 "본인 과실 있으면 서로 인정을 하고,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왜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변호인을 불러야 하고, 만날 수도 없고, 이렇게 되는 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불러서 나온 친구가 실종됐으면 어떻게든 찾는데 협조를 하려 해야 하는데 최면 수사를 하기로 한 날 A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왔다.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 아닌가"라고 의아해했다.
사건의 이슈화로 인해 달라진 점도 있다. 많은 국민들은 그 넓은 한강공원에 CCTV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현실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됐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강공원 CCTV 개선 등 스마트도시에 맞는 안전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한강에 총 천320대의 CCTV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10여 곳이 넘는 한강공원 구역 내 CCTV는 163개에 불과했다"며 "CCTV·신호등·가로등·교통신호기 등을 한 데 묶은 '스마트폴' 표준 모델을 마련해 새로운 안전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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