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상자산) 투자 덕분에 대기업에서 퇴사한다는 글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됐다.
'도대체 얼마나 벌었길래 대기업을 그만뒀을까'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시자는 "34살인데 코인 덕분에 대기업에서 퇴사합니다. 축하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업무 중 지속 핸드폰 사용, 재택근무 중 자리 비움으로 인한 업무 태만으로 권고사직 당했다"고 적었다. 식스센스, 유주얼 서스펙트를 능가하는 엄청난 반전이었다.
우스갯소리로도 들리는 이 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은 암호화폐 시장이 24시간 장이 돌아가므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이에 몰입해 있는 직장인이 많다는 방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글에는 "코인 하지 말라는 이유가 저거다. 아무리 이익이 발생한다고 해도 갑작스럽게 상승하면 일은 손에 안 잡히고 굳이 이렇게 힘들게 일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빠지고 만다", "코인 해서 돈 벌면 인생 필 거 같지만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나간다. 영원히 내 돈일 거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이득을 봐도 손해를 입어도 무감각해지고 이게 뭔가 싶고 점점 실제 생활에서 박탈감을 느낀다"는 댓글이 달렸다.
실제 가상자산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이로 인한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에는 강원지역에서 암호화폐 투자 실패를 비관한 것으로 추정되는 2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그는 최근 암호화폐 투자 실패로 거액의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는 "50% 손실 났는데 환불받을 방법 없나, "결혼자금이었는데 내 돈 어떡하지", "며칠 만에 한 달 월급 벌었더니 일하고 싶지 않다" 등 글들이 쏟아졌다.
반면 "회사 사람 중에 20억 수익 내고 정말 퇴사한 사례가 있다", "회사 직원은 코인으로 14억 벌어서 부부가 중형차 각자 뽑았다고 한다" 등의 성공담도 공유됐다.
아울러 "요즘 주식 코인 안 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 초저금리 상황에서 여전히 예금 적금만 하는 2030은 거의 찾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왔다.
도지코인에 자신의 전 재산 11억을 투자한 사례도 최근 화제가 됐다.
본인을 4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게시자는 지난 9일 "도지에 전 재산 몰빵했고 끝까지 갈 것이다"라며 자신의 보유자산 포트폴리오를 공개했다.
실제 매수금액은 11억 7800만 원에 달했다.
이 글에는 "데이터 수정한 주작이길 바란다"는 글과 "나 같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저렇게는 못 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암호화폐 투자 열풍으로 부작용이 속출하자 경찰 내부에서는 수사·청문 부서의 신규 투자를 금지하고, 기존 보유 내역 신고를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7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수사부서와 청문감사 소속 경찰관들의 암호화폐 신규취득을 금지하고, 이미 보유한 자산은 신고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
구체적인 대상은 사이버범죄수사대,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 금융범죄수사대, 청문감사담당관실 등 감찰·감사 관련 부서다. 암호화폐와 직무 관련성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수사부서 외 경찰관들에게도 투자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직무관련성, 특히 내부정보를 활용한 암호화폐 투자 행위가 발견되면 징계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수사·청문 부서가 아니라도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
암호화폐 거래가 20.30세대를 중심으로 급증하면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아직 정부는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암호화폐 제도화가 자칫 투기를 부추길까 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암호화폐 시장 규모는 약 2조6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중 비트코인은 약 1조 달러로 43% 수준이다. 올 초 70%에 비해 급락했다. 최근 알트코인(비트코인 이외의 암호화폐)이 급등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한 달간 약 60%에서 43%로 급격히 하락한 것을 암호화폐 버블 신호라고 관측했다.
2017년 12월 비트코인의 시총은 전체 암호화폐 시장의 55%에서 35% 이하로 급락했던 당시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근 부동산 급등 등으로 위협을 느낀 청년들이 암호화폐를 탈출구를 여기고 앞다퉈 몰려가는 것을 막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계층 사다리가 끊어진 가운데 유일한 희망은 암호화폐라며 옹호하는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투자 자산으로써 암호화폐의 특징이 ‘극심한 변동성’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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