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현 하시마시 오쿠다농원에서 생산되는 딸기 브랜드 '비진히메(美人姬)'는 올해 5만4000엔, 우리 돈으로 56만원에 판매된다. 그것도 딸기 한 상자가 아니라 단 한 알의 가격이다. 이 농장 대표인 오쿠다 미키오 씨가 개량한 비진히메는 크기가 어린이 주먹 만하고 무게는 80g을 넘는다.
딸기 한 알을 50만원 넘게 주고 사먹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지만 오쿠다 대표는 "선물용으로 주문하는 고객이 매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니혼바시의 센비키야는 1864년 창업한 과일 전문점이다. 센비키야의 명물 머스크멜론은 현재 한 통 가격이 1만7280엔이다. 머스크멜론과 망고, 오렌지를 담은 과일바구니는 3만2400엔에 판매된다. 앵두는 300g 한 상자가 3만2400엔이다.
2018년 센비키야의 매출은 92억엔으로 20년새 5배 늘었다. 센비키야의 머스크멜론을 선물받은 중동 고객이 매월 전용기로 이 곳의 과일을 실어나른다는 소문도 있다.
일본은 명품 과일의 천국이다. 도심 백화점의 과일 매장에는 어김없이 눈을 의심케 하는 가격표가 붙은 과일이 진열돼 있다.
일본의 명품 과일 시장을 싹틔운 건 고유의 선물문화라는 분석이다. 일본에는 계절마다 거래처나 친지들과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있다. 한 여름에는 오츄겐(お中元), 연말에는 오세이보(お?暮)라고 해서 1년간 신세진 분들께 고급품을 선물하는 관습도 뿌리깊다. 이 때 단골로 쓰이는 품목이 명품 과일이다.
일본의 전통 고급요리인 가이세키 요리에서 과일을 '즙이 많은 과자'라는 뜻의 '미즈카시(水菓子)'로 대우한 전통도 과일의 명품화에 기여했다. 에도시대 양과자는 최고급 디저트였다.
명품 과일을 찾는 문화는 명품 과일을 만드는 저변을 낳았다. 200여년 전 딸기가 처음 일본에 들어왔을 때 일본인들은 관상용으로만 딸기묘목을 재배했다. 식용으로 딸기를 재배한 건 150여년 남짓이지만 그 사이 일본인이 개량한 딸기 품종은 100가지가 넘는다.
1970~1980년대까지만해도 딸기는 단맛보다 신맛이 강해 설탕이나 연유를 찍어먹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는 시판 요구르트와 같은 수준인 15도까지 당도가 높아져 딸기 자체의 맛을 즐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1978년 품종 개량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종묘법이 제정되고, 산지에 따른 품종등록제도가 실시되는 등 정책지원도 뒷받침됐다.
덕분에 지금은 일본 전역에서 고유의 과일 품종과 브랜드가 생산되고 있다. 수박만 하더라도 삼각형이나 하트형이 있는가 하면 사각형과 메론만한 수박도 있다. 유통이 쉽거나 크기가 작은 일본 일반 가정집의 냉장고에 보관이 편리하도록 개량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시즈오카현에서 딸기농장을 경영하는 가와시마 히데토쿠 구노야농장 대표는 "물건 개량에 열심힌 일본인 특유의 DNA가 딸기의 다품종화를 낳았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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