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가 품은 예술공간…현대미술의 다채로움 오롯이

입력 2021-05-13 17:09   수정 2021-05-17 14:30

“이렇게 높은 건물에 미술관이 있다니요.”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롯데뮤지엄을 찾은 해외 유명 예술가들은 건물 외관에 먼저 압도된다. 미술관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마천루인 서울 신천동 롯데월드타워 7층에 자리잡고 있어서다. 구름 위로 솟은 건물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2019년 전시를 위해 방한한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제임스 진은 롯데월드타워 모습에서 어릴 적 읽은 동화 《잭과 콩나무》를 떠올리고 구름 위를 떠다니는 소년을 표현한 작품 ‘디센던츠-블루우드’를 그렸다.

미술관 내부에 들어선 예술가들은 전시공간을 보고 또 한번 놀란다. 면적은 1320㎡로 국공립미술관의 대규모 전시실 수준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넓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병수 건축가가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덕분이다. 3m인 층간 높이는 5m까지 올렸다.

전시 때마다 작품 특성에 맞춰 가벽을 설치해 구조를 대폭 바꾸는 것도 롯데뮤지엄의 특징이다. 같은 장소지만 관객은 전시마다 전혀 다른 동선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특성과 예술가의 상상력이 결합하면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창의적인 전시가 탄생한다. 2018년 팝아트 거장 케니 샤프의 ‘슈퍼 팝 유니버스’ 전시장 입구에는 1970~1980년대 미국 뉴욕에 있었던 전설적인 클럽인 ‘클럽57’의 모습이 재현됐다. 당시 샤프와 키스 해링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만나 예술을 논했던 장소다. 샤프가 LG전자의 로봇청소기를 이용해 제작한 강렬한 색상의 캐릭터들은 전시장 곳곳을 누비며 관객의 눈길을 끌었다.

롯데는 2015년 10월 롯데문화재단을 출범시켰다. 많은 국민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다. 신동빈 회장이 사재 100억원을, 롯데물산 롯데쇼핑 호텔롯데가 각각 현금 33억원을 출연했다. 기존 롯데의 사회공헌 활동은 장학사업 중심이었지만, 재단 출범 후 문화사업을 통한 사회공헌이 본격화했다. 이듬해 8월 롯데콘서트홀이 문을 열었고 2018년 1월 롯데뮤지엄이 개관했다. 상업시설과 오락시설 위주인 잠실 지역에 새롭게 문화 랜드마크를 연다는 계획이었다.

롯데뮤지엄은 개관 이후 매년 3~4회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획전을 열고 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수준 높은 전시를 이어간다는 평가다. 전시 작가 면면만 봐도 국내 어느 미술관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쟁쟁하다. 천재 아티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와 미니멀리즘의 거장 댄 플래빈, 독특하고 새로운 현대 초상 회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알렉스 카츠의 작품 등이 미술관을 거쳐갔다.

매년 20만 명 넘는 관람객이 이곳을 방문한다. 주 관람객층은 20~30대. 롯데백화점과 롯데월드 등 다른 시설에 방문했다가 이곳에 이끌려 예술에 관심을 두게 되는 관객도 많다. 미술관이 청년층의 전반적인 예술적 소양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소외계층이나 국군 장병을 초청해 무료로 전시를 관람하게 하거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시와 관련한 강의와 체험을 제공하는 등 미술관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하다.

지금 롯데미술관에서는 올해 첫 기획전으로 드로잉 작가 김정기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김 작가의 특기는 초대형 그림을 참고 자료나 밑그림도 없이 펜으로 쓱쓱 그려내는 것이다. 그에게 해외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드로잉 마스터’라는 별명을 붙였다.

관람객은 요일에 따라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스튜디오 ‘드로잉 나우’ 공간에서 김 작가와 질의응답을 하거나 그가 작품을 그리는 모습을 관람하게 된다. 롯데뮤지엄에서 그려낸 신작을 비롯해 드로잉, 회화, 영상 등 작품 2000여 점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7월 1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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