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내부에 들어선 예술가들은 전시공간을 보고 또 한번 놀란다. 면적은 1320㎡로 국공립미술관의 대규모 전시실 수준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넓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병수 건축가가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덕분이다. 3m인 층간 높이는 5m까지 올렸다.
전시 때마다 작품 특성에 맞춰 가벽을 설치해 구조를 대폭 바꾸는 것도 롯데뮤지엄의 특징이다. 같은 장소지만 관객은 전시마다 전혀 다른 동선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특성과 예술가의 상상력이 결합하면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창의적인 전시가 탄생한다. 2018년 팝아트 거장 케니 샤프의 ‘슈퍼 팝 유니버스’ 전시장 입구에는 1970~1980년대 미국 뉴욕에 있었던 전설적인 클럽인 ‘클럽57’의 모습이 재현됐다. 당시 샤프와 키스 해링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만나 예술을 논했던 장소다. 샤프가 LG전자의 로봇청소기를 이용해 제작한 강렬한 색상의 캐릭터들은 전시장 곳곳을 누비며 관객의 눈길을 끌었다.
롯데는 2015년 10월 롯데문화재단을 출범시켰다. 많은 국민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다. 신동빈 회장이 사재 100억원을, 롯데물산 롯데쇼핑 호텔롯데가 각각 현금 33억원을 출연했다. 기존 롯데의 사회공헌 활동은 장학사업 중심이었지만, 재단 출범 후 문화사업을 통한 사회공헌이 본격화했다. 이듬해 8월 롯데콘서트홀이 문을 열었고 2018년 1월 롯데뮤지엄이 개관했다. 상업시설과 오락시설 위주인 잠실 지역에 새롭게 문화 랜드마크를 연다는 계획이었다.
롯데뮤지엄은 개관 이후 매년 3~4회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획전을 열고 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수준 높은 전시를 이어간다는 평가다. 전시 작가 면면만 봐도 국내 어느 미술관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쟁쟁하다. 천재 아티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와 미니멀리즘의 거장 댄 플래빈, 독특하고 새로운 현대 초상 회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알렉스 카츠의 작품 등이 미술관을 거쳐갔다.
매년 20만 명 넘는 관람객이 이곳을 방문한다. 주 관람객층은 20~30대. 롯데백화점과 롯데월드 등 다른 시설에 방문했다가 이곳에 이끌려 예술에 관심을 두게 되는 관객도 많다. 미술관이 청년층의 전반적인 예술적 소양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소외계층이나 국군 장병을 초청해 무료로 전시를 관람하게 하거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시와 관련한 강의와 체험을 제공하는 등 미술관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하다.
지금 롯데미술관에서는 올해 첫 기획전으로 드로잉 작가 김정기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김 작가의 특기는 초대형 그림을 참고 자료나 밑그림도 없이 펜으로 쓱쓱 그려내는 것이다. 그에게 해외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드로잉 마스터’라는 별명을 붙였다.
관람객은 요일에 따라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스튜디오 ‘드로잉 나우’ 공간에서 김 작가와 질의응답을 하거나 그가 작품을 그리는 모습을 관람하게 된다. 롯데뮤지엄에서 그려낸 신작을 비롯해 드로잉, 회화, 영상 등 작품 2000여 점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7월 1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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