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부산에 몰린 투자자…수억짜리 그림, 걸자마자 팔려

입력 2021-05-14 17:25   수정 2021-05-21 16:01


“그림이 팔렸으면 표시를 해놔야지, 물어보기만 하면 죄다 팔렸거나 외지 사람이 ‘찜’했다는데 속 터져 죽는다카이요.”

제10회 아트부산이 개막한 지난 13일 부산 벡스코. 전시장 곳곳에서 “돈이 있어도 그림이 없다”는 부산 지역 컬렉터들의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전국에서 몰려든 컬렉터는 물론 미술에 관심이 없던 자산가들까지 앞다퉈 미술품을 사들이면서 구매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개막 한 시간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서 좀체 줄지 않았다. 이날 총 방문객은 1만8000여 명으로, 모두 VIP 자격으로 초청된 컬렉터였다. 이들이 하루 동안 사들인 미술품은 총 130억원 상당. 최근 한국 미술시장이 ‘역대급 호황’을 구가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가격·장르 불문 ‘완판 행진’
첫날부터 초고가 작품들이 해외 유명 갤러리들의 부스를 중심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세계적 갤러리인 영국 런던의 타데우스 로팍이 내놓은 독일 작가 다니엘 리히터의 2018년 대작 ‘Sick music’은 젊은 컬렉터가 8억원 안팎에 사갔다. 영국 조각가 앤서니 곰리의 6억원대 작품도 새 주인을 찾았다. 독일 베를린의 페레스 프로젝트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전시작 16점을 ‘완판’해 둘째날 전시 작품을 교체해야 했다. 최고가 판매 기록은 서울옥션 홍콩갤러리 SA+ 부스가 세웠다. 아르헨티나 출신 현대미술 거장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을 11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면서다.

새로 미술시장에 진입한 수요자들의 존재감도 두드러졌다. 국내 갤러리 부스에서는 이우환 박서보 김창열 등 인기 작가의 소품들이 걸리자마자 팔렸다. 아트앤초이스가 개막 직후 이우환 작품 4점과 이강소 작품 1점을 판매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미술에 관심이 없던 자산가들도 장기 투자 대상으로 그림을 구매하기 시작했다는 게 화랑들의 해석이다. 손영희 아트부산 이사장은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명품관에서 보이던 지역 자산가들을 전시장 곳곳에서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장르의 미술품이 새 주인을 찾았다. 국제갤러리 부스에서는 추상화가 유영국의 ‘작품’(1978)이 6억8000만원가량에 팔린 것을 비롯해 설치미술가 강서경과 사진가 구본창의 작품 등도 새 주인을 만났다. PKM갤러리는 추상화가 윤형근 작품 3점과 설치미술가 이불 작품 1점 등이 예약 판매됐다고 전했다.
행사·작품 수준 오르며 선순환
올 들어 국내 주요 아트페어가 열리기만 하면 ‘연타석 홈런’을 치고 있다. 지난 3월 화랑미술제와 4월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는 각각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풍부해진 시중 유동성이 미술시장으로 몰린 게 가장 큰 이유다.

전시 기획과 시설 등 행사 수준이 높아진 점도 흥행에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트부산의 특별전에 소개된 세계적인 현대예술가 필리프 파레노의 작품 ‘My Room is Another Fish Bowl’은 방문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거대한 생선 모양 풍선들이 둥둥 떠다니는 작품으로, 어린 관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덴마크 설치작가인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 앞에도 긴 줄이 늘어섰다. 관람객이 조명 앞에 서면 벽에 비친 그림자가 일곱 가지 색으로 나뉘는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일반 관람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 위주로 특별전을 구성했던 기존 아트페어들과 대조적인 풍경이다.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관계자는 이날 전시장을 둘러본 뒤 “미술시장 호황으로 수준 높은 작품이 많이 출품됐고, 전시 기획과 시설 등 아트페어 행사의 질이 높아지면서 다시 호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라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미술시장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아트부산에는 외국 화랑 18곳과 가나·국제·현대를 비롯한 국내 주요 화랑 등 총 110여 곳이 참여해 2500여 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아트부산은 16일까지 열린다.

부산=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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