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양모 못지않다'…'잔인한 방관' 일삼은 양부 행각

입력 2021-05-15 19:04   수정 2021-05-15 21:40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 가해자인 양부모에게 1심 재판부가 각각 무기징역과 5년 형의 선고를 내렸다. 검찰이 구형한 사형과 7년 6개월 형에 비하면 감형된 것이라 이에 아쉬움을 표하는 국민이 대다수지만 과거 판례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중형이 내려졌단 평가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읽으며 양모 장 모(35) 씨를 향해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살해할 확정적 고의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살인죄 적용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재판에서 아동학대 방치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정인이 양부 안 모(38)씨 또한 재판부의 질타를 받았다.

재판부는 안 씨에 대한 공소사실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양부로서 아내의 양육 태도와 피해자의 상태를 누구보다 알기 쉬운 지위에 있었음에도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학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납득할 수 없는 변명만을 하고 있다"면서 "아내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가 3회나 이뤄졌음에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아내의 기분만을 살피면서 학대를 방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이어 "오히려 아내의 일부 범행에 동조해 함께 피해자를 자동차 안에 유기하기도 했다"면서 "아내의 학대 행위를 제지하거나 피해자에게 치료 등 적절한 구호 조치를 했더라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사망 전날 어린이집 원장이 피해자의 악화된 건강 상태를 설명하고 피해자를 꼭 병원에 데려갈 것을 강하게 당부했음에도 이러한 호소조차 거부했다"면서 "피해자를 살릴 마지막 기회조차 막아 버린 점을 고려하면 엄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정인이의 사망 당시 응급실에서 정인이의 상태를 진료한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서 정인이의 배를 찍은 사진을 설명하며 "이 회색음영 이게 다 그냥 피다. 그리고 이게 다 골절"이라면서 "나아가는 상처, 막 생긴 상처. 이 정도 사진이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아동학대"라고 분노했다.

사망 전날 어린이집에 등원한 정인이는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고 선생님 품에 얌전히 앉아있거나 우두커니 고개만 돌릴 뿐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하원을 위해 찾은 안 씨에게 "병원에 꼭 데려가라"고 당부했지만 양부와 양모 누구도 정인이를 의사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사망 당일에도 정인이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장 씨가 "병원 데려가? 형식적으로"라고 안 씨에게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이들 부부는 16개월 아기의 실질적 고통은 외면하는데 급급했다.

안 씨는 앞서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에서 "육아 스트레스를 받는 아내를 달래주고 그의 방식에만 맞춰준 것이 결국 아내의 잘못된 행동을 부추긴 것 같다"고 에둘러 자신의 무고함을 항변했다.

이어 "다툼을 피하고 싶어 아내를 이해하고 감싸려고만 했던 자신의 안일함과 무책임함이 아이를 죽였다"며 에둘러 자신은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님을 강조했다.

장 씨 또한 재판부에 여러 차례 반성문을 제출하며 감형을 위해 애썼다. 하지만 장 씨가 안 씨에게 보냈다가 유튜버에 의해 불법적으로 취득돼 공개된 편지는 반성문에 담긴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정인이를 언급한 것은 앞으로 강아지를 키운다면 생각날 것 같다는 단 한마디뿐, 자신들의 주식 처분 얘기, 친딸의 영어 교육 문제, 이민 문제, 상대방에 대한 애정표현뿐이었다.

두 사람의 이중적인 모습은 복원된 휴대전화 메시지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장 씨가 "온종일 신경질, 대신 오늘 폭력은 안 썼다"고 하는가 하면 "정인이가 음식을 안 먹는다"는 아내의 하소연에 안 씨는 "하루종일 굶겨보라"고 했다.

하지만 안 씨는 아내의 정인이 학대 정황에 "와이프가 (정인이에 대한) 정이 없고, 스트레스 받았다는 걸 알지만, 아이를 이렇게 때리는지 몰랐다"면서 "알았다면 이혼해서라도 말렸을 것"이라고 책임을 전가시켰다.


장 씨는 재판부가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선고하는 순간 오열했다. 안 씨는 무표정하게 한숨만 내쉰 것으로 전해졌다. 안 씨는 이날 법정구속됐다. "남은 아이를 생각해 달라"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간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양모는 울 수라도 있지. 그 작고 약했던 정인이는 내장이 끊기는 고통 속에서도 울음 한 번 터트리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

양부모가 더한 중형을 받는다고 해도 정인이에게 행한 악행의 대가를 치르기엔 부족하다는 한 네티즌의 말이다.

‘정인이 사건’의 결심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정빈 가천대 의과대학 법의학과 석좌교수는 "정인이 오른쪽 팔을 보면 피부는 깨끗하지만 팔뼈 아래쪽 제일 말단 부위가 완전히 으스러졌다"며 "(때렸다기보다는) 팔을 비틀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으드득 소리가 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정인이는 대장과 소장이 파열되지 않고 췌장 절단과 장간막 파열만 발생한 것으로 보아 2차례 이상 밟힌 것으로 보인다"면서 "8, 9, 10번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는데, 8번 갈비뼈는 이미 한번 부러진 후 치유된 상태였다. (정인이가) 울지도 않는 아이라고 했는데, 갈비뼈가 아파 울지 못했을 것"이라고 정인이가 생전에 느꼈을 고통을 대변했다.

이 같은 소견은 앞서 '그것이 알고 싶다'에 공개된 정인이 엑스레이를 보고 판독을 했던 현직의사의 의견과 거의 일치한다. 그는 "어깨나 팔을 잡고 애를 빙빙 돌렸는지 GH joint(어깨 관절) 부위의 손상 및 골절도 보인다. 어깨가 거의 뭉개진 것이다. 아니면 왼쪽 팔을 고정한 상태에서 복부나 명치를 엄청나게 세게 때리거나 발로 밟았다는 생각도 든다. 안 그러면 소아 견관절이 저렇게 골절소견이 나온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수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누구도 정인이를 입양가정이라는 작은 지옥에서 꺼내줄 수 없었고 결국 죽어서야 그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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