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형 건설회사는 올 들어 매일 임원회의를 열어 철근 수급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철근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뒤 멈춰서는 공사현장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산 제품의 수입도 지난달부터 끊기면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경남 지역에선 총 공사비만 1400억원에 달하는 한 아파트 건설현장의 공사가 올초 철근 부족으로 40여 일간 중단됐다. 시공사가 떠안은 피해액만 19억원이 넘는다.
연간 220만t의 철근(봉강)을 생산하는 동국제강 인천공장은 올 들어 밤낮없이 모든 라인을 완전가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동국제강 영업팀엔 철근을 더 빨리 공급해달라는 유통상과 건설사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철근 수요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철근파동을 촉발한 것은 코로나19였다. 통상 국내에서 연간 생산되는 철근은 1000만t이 넘는다. 현대제철, 동국제강, 대한제강, 한국제강 등이 대표 생산업체다. 철근은 전기로에 철스크랩(고철)을 넣어 제조한다. 국내 최대 철강업체인 포스코는 고로가 주력이어서 철근을 생산하지 않는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철근 생산량은 942만t이다. 2017년(1129만t) 대비 16.6% 급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철근 수요가 감소하자 생산량을 대폭 줄였다. 하지만 올 들어 건설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면서 공급이 부족해졌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97.2로 5년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이달엔 109.2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원재료인 고철 가격이 급등하자 상승분은 고스란히 철근 가격에 반영됐다. 1년 전 t당 23만8000원이던 국내 고철가격은 이달 14일 두 배인 46만5000원까지 올랐다. 중국 정부가 이달부터 내수 확보를 위해 철근에 대한 수출환급세를 폐지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연간 100만t의 철근 중 60% 이상이 값싼 중국산이다. 하지만 수출환급세 폐지로 수입업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늘면서 중국산 철근의 가격마저 오르고, 공급도 줄어들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철근파동에 따른 피해는 민간보다 공공 건설현장에서 심각하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 연장공사를 하고 있는 대구도시철도건설본부는 최근 철근을 확보하지 못해 공사가 지연될 위기에 처했다. 관급공사의 경우 조달청에 등록된 자재업체가 철근을 공급한다. 가격이 치솟자 자재업체들이 조달청보다 가격을 많이 쳐주는 민간 건설업체에 철근을 우선 공급하다 보니 공공공사가 먼저 영향을 받는다.
철근파동이 단기간 내 해결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확산하면서 철근을 사재기하는 유통상도 적지 않다는 게 건설업계의 설명이다. 건설업계는 이번 철근파동이 2008년 건설현장을 강타한 철근대란을 넘어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4대강과 보금자리주택 건설이 동시에 이뤄진 데다 중국 수입물량마저 줄면서 국내 건설현장은 한동안 철근 품귀현상을 겪어야 했다.
강경민/하헌형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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