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김도형의 금융法](30)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1달반…금융소비자 보호를 다시 생각한다

입력 2021-05-17 15:05   수정 2021-05-17 15:07



최근 몇 년간 독일국채 금리나 영국 이자율스왑 금리 등과 연계한 사모펀드,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등 굵직굵직한 금융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2020. 3. 24.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그로부터 1년 뒤인 2021. 3. 25. 부터 시행되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금소법’)」 중 핵심은 금융회사가 금융상품을 판매함에 있어 6대 판매규제(적합성 및 적정성의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금지, 부당권유 금지, 과장광고 금지)를 따르도록 한 것이다.

필자는 금소법 시행 이후 변화된 현장의 모습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장모님을 모시고 모 금융사에 펀드상품 가입을 위해 들렀는데 그 곳에서 계좌개설하고 펀드 가입하는데 장장 1시간 30분 가량이나 걸렸다. 중간에 그만두고 나오려다가 지금까지 들인 시간이 아까워 어쩔 수 없이 앉아 있었다. 예전에는 은행직원들이 연필로 동그라미 쳐 주는 곳에 사인만 하던 투자설명서, 투자자 정보확인서 등을 한줄 한줄 읽고 이를 투자자가 듣고 이해하였음을 확인하는 의미로 “예”라는 답변을 녹음하느라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거보다 훨씬 많아진 서류 한뭉치를 받아들고는 금융사를 나왔다. 나름 금융 사건을 많이 다루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금융 용어들이 난무하는 위 내용들이 그래도 들을만했지만, 금융상품에 익숙하지 않은 장모님의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내용들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역시나 장모님은 사위가 추천하는 상품이니 믿고 가입한 것이지, 설명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계셨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 변호사로부터도 비슷한 경험에 대한 푸념을 들었다. 이미 여러 차례 가입한 경험이 있는 만기 도래 ELS 상품을 해지하고 비슷한 상품에 가입하려고 은행을 방문하였는데, 사실상 회차만 다르고 구조가 동일한 상품을 매 계약마다 모두 새롭게 설명하고 그 내용을 녹취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도저히 시간을 더 쓰고 있을 수가 없어서 일단 1개 상품만 가입하고 은행문을 나왔고, 추가로 가입하러 갈 시간을 낼지는 고민이라고 했다.

힘들기는 금융회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금융회사 직원들 또한 기존에 서면작업으로 끝냈던 서류들을 다시 한 번 읽자니 힘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읽다보면 고객 중 열에 아홉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를 뜬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혼란은 금소법이 시행된 지 약 1달간 계속되었고, 약 1달이 지난 뒤 금융당국이 “금융상품에 가입하려는 고객에게 요약설명서 위주로 설명해도 된다”는 의견을 내고, 소비자의 이해를 돕는 상품설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보완책을 내놓으면서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금소법이 당초 설명의무를 도입한 취지는 위와 같은 상황을 예정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면확인과 녹취록 작성은 금융기관의 자기방어를 위한 자료가 될 뿐 투자자 보호를 위한 도구가 되기는 어렵다. 녹취록을 작성함에 있어 금융기관 직원에게 불리한 내용을 고스란히 녹취할 바보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금융기관에서 녹취하지 않고 고객과 몰래 나눈 대화를 녹음한 녹음파일이 더 유용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이 상품을 가입하는 단계에서 오랜 기간 신뢰를 쌓은 금융기관 직원을 의심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금융 사고를 대비하여 몰래 녹취를 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진정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금융소비자를 소송으로 내모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소송으로 가는 경우 몇 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할 뿐만 아니라, 증거와 금융지식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소송에서 금융소비자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오히려 직권조사가 이루어지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안에 대해 쌍방이 수긍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금융소비자 보호가 실현될 수 있다. 과거에는 분쟁조정액수가 기대보다 낮아 금융소비자가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높았는데, 최근에서 분쟁조정액수가 높아지며서 금융기관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 라임사태 등에서 높은 비율의 조정안을 받아들인 금융사의 수장들이 금융당국의 중징계 결정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 새로운 금융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금융사 임원들 입장에서는 일단 모르쇠로 일관하고 투자자들에게 소송하라고 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소송결과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우며, 그 결과는 본인 임기가 끝난 뒤에 나올 거니깐.

필자는 많은 금융사고에서 투자자, 금융회사 임직원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분쟁조정 또는 소송을 대리하였다. 양쪽 모두 100% 보상을 바라거나 100% 책임지기를 원하지는 않았고,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해당 직원은 분쟁조정에 응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징계를 받을까 걱정하고 이를 결재하는 결재권자는 배임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한다. 결국 많은 사건들은 법원으로 향하게 된다.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금융범죄에 대해서는 분명하고도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점점 금융상품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판매하는 사람도 투자하는 사람도 상품을 100%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을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물리겠다는 것은 오히려 금융소비자의 보호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금소법 시행으로 인한 혼란이 기존 거래편의 중심의 관행을 깨지 못한 것에 기인한 것이라고 금융회사를 질타하고, 금융소비자에게도 설명시간이 부담스러워 금융회사 직원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 판매절차를 빨리 진행하게 한다면 당해 소비자는 투자손실에 대해 정당한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어 배상책임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금융회사가 읽어주는 모범답안을 시간 들여 들어 주었다고 과연 금융소비자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금융회사는 또 왜 이와 같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김도형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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