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사회학자는 지난 15년간 일본이 부활을 모색했기 때문에 앞으로 15년은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믿었다. 때마침 찾아온 코로나19를 ‘21세기의 흑선(黑船)’으로 봤다.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의 함대가 등장한 것을 계기로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새 시대가 열린 것처럼 코로나19가 일본의 낡은 체제를 단숨에 쇄신하는 기폭제(흑선)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런 유의 발언이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 운영사) 회장 같은 일본 사회의 이단아로 불리는 인사의 전유물이었던 이유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소위 제도권으로 분류되는 인사들도 ‘일본은 후진국’이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총무성 관료 출신으로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 NTT도코모 대표를 지낸 데라사키 아키라 일본 정보통신진흥회 이사장은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일본을 “쇠퇴도상국이자 발전정체국”으로 정의했다.
그는 2000년까지 세계 2위였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순위가 2019년 25위로 떨어진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이냐고 되물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국제사회를 이끄는 존재가 아니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불리던 현대가 예외적인 시대였다”고까지 주장했다.
급기야 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80년 동안 일본은 변한 게 없다는 반성마저 나온다.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북진과 남진을 병행해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을 모두 적으로 돌린 80년 전처럼 방역과 경제활동 유지, 도쿄올림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대만처럼 코로나19에 잘 대처해 국격을 높인 나라와 대조적이란 목소리도 많다.
코로나19 초기 방역 모범국으로 세계인의 부러움을 산 한국의 위상도 이전 같지 않다. 눈 깜짝할 새 백신 후진국이 됐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루라도 빨리 백신 접종률을 높여 일상생활로 돌아가지 못하면 한국도 ‘코로나19로 선진국에 진입하는 게 물 건너갔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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