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후 단둘이 주점…대법 "피해자답지 않다고 진술 배척 안돼"

입력 2021-05-17 08:09   수정 2021-05-17 08:11


대학생들 간 일어난 강제추행에서 피해자가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단 둘이 시간을 보냈다며 무죄가 선고된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지난달 29일 유죄 취지로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지난 2016년 12월 27일 대학교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간 숙소에서 잠든 A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A씨의 곁에서 잠을 자다가 A씨의 신체를 수차례 만진 혐의를 받고 있다.

A씨가 이씨를 고소한 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2년 7개월이 지난 2019년 8월경이었다. 이씨가 입대하면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A씨는 제대 후 복학한 그와 마주칠 일이 많아지자 당시 일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가 다른 친구들에게도 당시 사건을 말한 것을 알게 됐고, 결국 이씨를 고소했다.

1심은 죄가 인정된다고 보고 이씨에게 징역 6월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성폭력 피해자에 비해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피고인은) 피해자가 먼저 자신을 만지는 행위를 했다거나 자신을 무고하고 있다는 식으로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모습까지 보이는 등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지 않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씨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성추행 사건 직후에도 이씨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단 둘이 만나 술을 마시는 등 어색함이나 두려움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사과를 요구할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이씨와 멀티방에 방문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보였다.

2심 재판부는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하기에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A씨에게 작성한 사과문도 마음을 달래려는 차원에서 작성된 것으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이 같은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피해자다움'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진술을 의심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이씨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 "A씨가 피고인으로부터 당시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한 것"이라며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며 파기환송을 주문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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