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제약·바이오 업종이 수익률 부진의 늪에 빠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급등했지만, 이 같은 분위기가 업종 전반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과거 호재의 온기가 업종 전반으로 퍼지던 패턴과는 다른 양상이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헬스케어 지수는 4465.55로 지난 14일 거래를 마쳤다. 작년 종가 5517.31 대비 19.06% 하락한 수준이다. 각 산업군을 대표하는 종목들로 구성된 KRX 업종 지수 중 작년 말 대비 지수가 하락한 업종은 헬스케어가 유일하다. 헬스케어 다음으로 수익률이 저조한 업종은 8.45%가 오른 반도체이며, 가장 수익률이 좋은 업종은 53.22%가 상승한 철강이었다.
대형주들의 묶음인 KRX헬스케어 지수는 부진했지만, 코로나19 백신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많이 오른 편이다. 한국이 글로벌 백신 생산 기지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로 위탁생산(CMO) 기업들 위주로 상승세가 강하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메신저리보핵산(mRNA) 방식의 백신 위탁생산(CMO) 기대감이 높아지며 지난 14일 주가가 94만8000원까지 올라 LG화학을 제치고 코스피 시가총액 규모 3위에 랭크됐다. 백신 협력이 주요 의제 중 하나인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모더나가 개발한 백신의 CMO 가능성이 제기됐고, 회사 측이 이를 부정하지 않아 전거래일에만 8만2000원(9.47%) 상승했다.
러시아에서 개발된 스푸트니크V의 CMO 계약을 맺은 컨소시엄을 주도한 휴온스글로벌의 주가도 크게 뛰었다. 휴온스글로벌은 휴메딕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등과 함께 구성한 컨소시엄이 스푸트니크V 생산을 위한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고 지난달 16일 밝힌 뒤 이달 14일까지 38.03%가 올랐다.
이미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백신을 위탁생산하고 있으며, 노바백스 백신 생산을 위해 기술을 이전받은 SK바이오사이언스도 주목된다. 지난 3월18일 상장된 이 회사의 주가는 상장 첫날 ‘따상(공모가 대비 160% 상승)’을 기록한 뒤 내리막을 타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혈전증 논란이 뜨겁던 지난달 8일 반등에 성공했다. 자체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 GBP501과 NBP2001에 대한 기대감 덕이었다. 지난 14일 종가는 14만6000원으로 따상 가격인 17만원에는 못 미치지만, 공모가 6만5000원과 비교하면 124.62% 상승한 수준이다.
작년에는 제약·바이오 업종의 수익률이 주요 업종 중에 가장 높았다. KRX헬스케어지수의 작년 종가는 1년 전 대비 89.25% 상승해 주요 업종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기차 배터리 관련주가 포함된 에너지화학(64.07%)과 감염병 확산으로 인한 택배 수요 증가 수혜를 받은 운송(59.49%)이 뒤를 이었다. 작년 제약·바이오 업종의 상승은 코로나19 진단키트 특수와 치료제 개발 모멘텀 덕이었다.
올해 들어 상황은 바뀌었다. 셀트리온을 제외하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기업들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는 녹십자의 혈장치료제 후보 지코비딕(GC5131A)에 대한 조건부 허가가 불발됐다. 췌장염 치료제 나파벨탄(나파모스타트)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던 종근당도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조건부 허가를 받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나마 두 회사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해 실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허가 심사를 신청했지만, 작년 감염병 확산 국면에서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외쳐 주가만 부양한 뒤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은 기업도 적지 않다.
특히 셀트리온은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레그단비맙)의 조건부 허가를 2월5일 받아냈는데도 주가가 내리막을 탔다. 식약처가 렉키로나에 대한 조건부 허가 심사결과를 발표하기 나흘 전인 2월1일 셀트리온은 37만1000원까지 올랐지만, 지난 14일 종가는 27만500원이다.
코로나19 치료제 이외의 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감도 예전만 못하다. 매년 초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제약·바이오 투자 행사인 JP모건헬스케어컨퍼런스, 미국의 양대 암학회 중 하나인 미국암연구학회(AACR) 등 2개의 대형 이벤트를 치렀지만 제약·바이오 업종에 힘이 되지 못했다. 행사 개막 전 기대감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후 주가가 행사 기대감이 반영되기 전보다 더 빠지는 모습이 반복됐다.
이에 대해 하태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신약 개발 데이터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가 많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다음달 4~8일 개최될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발표할 기업들의 명단과 예상 발표 제목의 윤곽이 나오고 있지만, 주가 반응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 연구원은 “제약·바이오주에 대한 주식 수급도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배경으로 ▲이달부터 재개된 공매도 물량 증가 분위기 ▲금리 상승 가능성 ▲변동성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의 투자 수요가 가상화폐로 쏠린 점 등을 꼽았다.
제약·바이오 업계 안에서는 가상화폐에 투자 수요를 빼앗겼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바이오업체 IR 담당자는 “신약 개발 모멘텀에 투자해 ‘대박’을 노렸던 투자자들에겐 24시간 거래되며 가격 등락폭도 바이오 기업 주식보다 큰 가상화폐가 더 매력적인 투자자산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 공매도 재개와 금리 상승 우려는 제약·바이오 업종에만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니다. 공매도와 관련해서도 제약·바이오 종목은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지난 3~14일 공매도 물량 순위에서 가장 상위에 랭크된 제약·바이오 종목은 180만9820주가 매도된 신풍제약으로 19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어 텔콘RF제약(163만8150주·21위), 씨젠(127만2134주·27위), 영진약품(104만1348주·38위), 셀트리온(101만8851주·39위) 등이 뒤를 이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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