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투자로 글로벌 경쟁력 높이는 기업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이 미국 현지 투자계획을 잇따라 공개하고 있다. 오는 21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반도체·배터리 등 공급망 강화와 ‘바이 아메리칸’ ‘그린뉴딜’ 정책 등에 대한 선제 대응이다. 삼성·SK하이닉스, 파운드리 확대
삼성, 현대차, SK, LG 등 국내 4대 그룹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거나 투자를 검토 중인 규모는 40조원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증설하는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이 이 가운데 절반을 차지한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공장이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과 반도체·정보기술(IT) 기업들의 메카로 부상한 애리조나, 뉴욕 등을 후보지로 놓고 검토 중이다. 오스틴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SK하이닉스도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 확대한다. 8인치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지금의 두 배로 늘린다는 목표로, 국내 설비를 증설하고 추가 인수합병(M&A)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 비중이 전체 매출의 2% 수준에 불과한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다. 앞으로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 확대해 세계적으로 공급이 부족한 비메모리 반도체 수급 안정화에 기여하고,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 기업 지원을 통해 비메모리 생태계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다.
현대차, 미국에 전기차 생산설비
현대차는 2025년까지 미국에 전기차 생산설비와 수소,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에 총 74억달러(약 8조원)을 투입하는 내용의 투자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미국의 친환경차 정책과 수소 생태계 확산 등에 선제 대응하고 미래 성장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결정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미국 앨라배마를 포함한 투자 후보지가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전기차 배터리 업계도 미국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오하이오주에 총 2조7000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제2 합작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LG 측 투자금은 1조원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합작공장 외 미국 내 두 곳에 2025년까지 5조원 이상을 투자해 독자적인 배터리 공장도 신설하기로 했다.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1·2공장을 건설·가동 중인 SK이노베이션은 3조원 규모의 3·4공장 추가 건설을 검토 중이다. 1·2공장 투자금액 3조원을 합해 총 6조원이 투입되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완성차 기업과 미국 내 배터리 조인트벤처(JV) 설립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SDI도 미국 내 합작회사 등을 통한 공장 건설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고부가 소재 투자
기업들은 고부가 소재 투자도 늘리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최근 롯데정밀화학 인천공장과 롯데알미늄 안산1공장을 찾아 고부가 소재에 대한 투자 확대 방침을 밝혔다. 신 회장은 “고부가 배터리 소재 투자를 더 확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에서 신규 사업 기회를 선제적으로 발굴해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롯데정밀화학 인천공장은 국내 유일의 식·의약용 셀룰로스유도체 생산공장으로, 최근 증설을 마치고 상업생산을 앞두고 있다. 셀룰로스유도체는 식물성 펄프를 원료로 한 화학소재다. 롯데알미늄 안산1공장은 지난해 9월 2차전지용 양극박 생산라인 증설 작업을 마쳤다. 롯데알미늄은 1100억원을 투자해 헝가리에 2차전지용 양극박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한화는 자회사들의 실적 호조에 힘입어 올해 1분기 수익성을 대폭 개선했다. 1분기 영업이익이 848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86.23%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자회사인 한화솔루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분기에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덕분이다. 한화는 자체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새로운 사업도 수주한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부문은 질산 설비 투자로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정밀화학 사업을 강화하고, 방산 부문과 기계 부문도 각각 레이저 무기와 2차 전지 등 신규 성장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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