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前 정몽구의 한마디, 수소 생태계 씨 뿌렸다

입력 2021-05-18 17:08   수정 2021-05-19 01:20

“수소차 100대를 각각 다르게 만들어봐. 쓰고 싶은 기술 다 적용해서.”

2006년 경기 용인시 현대자동차 마북연구소를 찾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직원들에게 내린 주문이다. 김세훈 현대차 연료전지사업부장(부사장)은 2019년 세계 최대 전자쇼 CES에서 “당시 연료전지가 6억원이었는데, 정 회장이 ‘석유가 안 나는 나라에서도 차를 굴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수소차 개발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현대차의 수소차 개발은 1998년 시작됐다. 정 명예회장이 회장에 취임한 때다. 현대차는 그해 연료전지 개발조직을 신설했고, 2년 뒤 싼타페를 기반으로 첫 수소차를 개발했다. 이후 수소차 핵심 기술인 배터리 개발을 위한 투자를 강화해 계획보다 2년 앞선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차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

처음 양산된 투싼ix 수소차는 100㎾급 연료전지 시스템과 2탱크 수소저장 시스템(700기압)으로 3~10분 만에 충전해 415㎞까지 주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2018년엔 2세대 수소차 넥쏘를 출시했다. 1회 충전 시 최대 609㎞의 주행거리와 동급 내연기관차 수준의 출력까지 확보했다.

넥쏘는 2019년 4987대, 2020년 6781대 팔리며 세계 수소차 시장에서 1위를 기록했다. 지난 4월까지 글로벌 누적 판매량 1만5000대를 넘어섰다. 20여 년간 뚝심있게 밀어붙인 결과다.

2018년 당시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선 정의선 회장은 넥쏘에서 나아가 수소버스, 수소트럭에 이어 연료전지 시스템 판매로 수소 생태계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차는 2018년 울산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도시에 최대 422㎞를 달릴 수 있는 3세대 수소버스를 공급했다. 지난해 4월엔 세계 최초로 수소트럭 양산 체제를 구축하고, 10대를 스위스에 수출했다.

현대차는 연료전지 시스템으로 비(非)자동차 부문에도 진출했다. 지난해 9월 스위스 수소저장 기술 업체에 연료전지 시스템을 처음 수출했다. 올 들어선 중국 광저우에 첫 연료전지 시스템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완공 이후 연 6500기를 생산할 계획이다. 2030년에는 세계에 연간 70만 기의 연료전지 시스템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정의선 회장은 수소사회 확장을 위해 다양한 기업과 협업하고 있다. 올 3월엔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수소사업 관련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참여하는 협의체인 ‘한국판 수소위원회’를 상반기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 회장은 “수소는 에너지원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저장체로도 활용할 수 있어 탄소중립 시대에 ‘에너지 화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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