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악재 딛고…美·日 대기업 제친 세계 1위 韓 중견기업

입력 2021-05-19 13:45   수정 2021-05-19 15:36


국내 중견 발전기자재업체 비에이치아이(BHI·대표 우종인)가 친환경 LNG발전의 핵심 설비인 배열회수보일러(HRSG) 시장에서 지난 1분기 수주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정부의 '탈원전·탈석탄'에너지 정책으로 기존 발전 설비업체들이 생존의 기로에 놓이게 된 절박한 상황에서 거둔 쾌거여서 의미가 더 크다는 분석이다. 이 회사는 최근 정부의 차세대 가스복합화력발전 표준 사업자로 선정돼 2023년 세계 최초로 친환경 고효율의 초초임계압 HRSG를 선보일 예정이다.
美 GE, 日 미쓰비시파워 누르고 1분기 '깜짝' 세계 1위 달성
HRSG는 LNG를 가스터빈에서 연소시켜 나온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가스터빈, 스팀터빈과 함께 LNG발전의 핵심 설비로 꼽힌다. HRSG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체의 촘촘한 혈관처럼 설계된다. 고온의 배기가스가 직경 3.8㎝, 길이 24m짜리 관 5000여 개(전체 길이 120㎞)로 구성된 HRSG 본체를 통과하면 관 속을 흐르는 물이 순식간에 수증기로 변해 강한 힘으로 스팀터빈을 돌리는 구조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에 연비가 중요하듯 LNG발전소는 열효율이 중요하다”며 “HRSG는 LNG발전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고 설명했다.

BHI는 연 매출 2500억원 규모인 국내 최대 HRSG 제작업체다. 전 세계 42개국에 500기 이상 36GW규모의 HRSG를 공급해 관련 시장에서 미국 HRSG전문업체 누터에릭슨, 제너럴일렉트릭(GE), 일본 미쓰비시파워 등에 이어 4~5위권을 형성해왔다. 이 회사는 지난 1분기에만 작년 연간 수주 물량인 1489MW규모를 수주해 세계 1위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는 이변을 기록했다. 국내 LNG발전소 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UAE) 중국 방글라데시 등 LNG발전소의 HRSG물량을 '싹쓸이'한 것이다. 그동안 번갈아가며 HRSG 세계 1위를 차지해온 누터에릭슨과 GE는 각각 2위, 3위로 밀려났다. BHI 관계자는 "외국기업에 시장 개방이 제대로 안된 중국과 인도시장을 제외하면 수출 가능 시장 전체 물량의 50%가량을 수주한 것"이라고 말했다.
'탈원전·탈석탄'악재 딛고 LNG 원천 기술에 공격적 투자
업계에선 정부의 '탈원전·탈석탄'정책으로 기존 발전 설비업체 수십 곳이 문을 닫은 가운데 BHI가 단기간내 LNG발전 중심의 사업포트폴리오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BHI는 지난 2년간 매출의 일부분을 차지했던 석탄화력·원자력발전 사업부문을 축소하며 직원 150여명이 퇴사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투자로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지난해 11월엔 130년 역사를 가진 세계 3대 발전설비업체 미국 아멕포스터휠러의 HRSG 원천기술 일체를 인수했다. GE, 독일 지멘스, 미쓰비시파워 등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세계적인 HRSG 원천기술 보유 업체가 된 것이다. BHI 관계자는 "로열티 비용을 아끼고, 기술경쟁력이 확보되면서 지난 1분기 세계 1위의 수주 실적을 거둘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초로 선보일 초초임계압 기술
LNG발전은 그동안 설비의 국산화율이 가장 저조한 발전 분야로 여겨졌다. 발전업계에선 그동안 LNG발전소 건립 비용의 50%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스터빈, 스팀터빈, HRSG 등 구매비용과 유지·보수비용을 합치면 수십 조원이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BHI의 '기술독립'으로 2023년엔 100% 국산 기술로 건설되는 첫 초초임계압 LNG발전소가 나올 전망이다. 정부는 차세대 가스복합화력발전 표준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최근 초초임계압 HRSG 기술개발 사업자로 BHI를 선정한 상태다. 초초임계압으로는 2023년 세계 첫 상용화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임계압이란 물이 증발없이 증기로 바로 변환하는 데 필요한 압력으로 터빈을 돌리기위한 물리적 조건이 된다. 초임계압 발전이란 임계압 조건(226Bar 압력) 이상의 압력과 증기온도 섭씨 600도 이상으로 발전 효율을 높인 것을 말한다. 섭씨 610도, 240bar압력의 초초임계압에선 발전에 더 최적화된 증기가 나온다. 기존 아임계압 대비 터빈에 작용하는 힘이 1.5배가 되면서 기동시간은 50% 단축돼 탄소배출량도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BHI가 개발을 주도하는 초초임계압 HRSG 기술은 이러한 극한의 조건을 견디는 설계가 필수다.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50%가량 적은 LNG발전소를 2020년 41.3GW에서 2034년 58.1GW로 약 17GW증설할 예정이다. BHI에 최소 1조원이상의 수주 기회가 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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