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입·출금 계좌에 1200만원 가량을 모아뒀던 대학생 A씨는 최근 모바일 뱅킹을 활용해 다른 은행으로 돈을 옮기려다 ‘한도제한’에 걸려 하루 30만원씩만 이체가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은행 창구를 방문해 제한을 없앨 방법을 문의하니 적금 10만원 이상의 자동이체를 건 뒤 3개월이 지나면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A씨는 "더 빨리 풀고 싶다면 '계열사 신용카드를 만들고 결제 계좌를 등록하면 된다'며 영업을 강요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은행들은 이런 제한을 두는 이유는 처음 개설된 계좌는 대포통장으로 쓰이거나 보이스 피싱 피해를 당할 우려가 높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도 제한을 풀기 위해선 계좌의 목적 증빙하는 다양한 서류를 요구한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소득금액증명원 등을 제출하는 것 만으로 손쉽게 제한을 풀 수 있지만, 직장이 없어 소득 증빙이 어려운 A씨와 같은 대학생이나 전업주부, 고령층들은 풀기가 어렵다. 은행 창구에선 요즘도 '내 계좌에서 돈도 못 옮기냐'는 소비자와의 승강이가 종종 벌어지는 이유다. 민원이 계속되면서 지난해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금융위원회에 제도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은 한도계좌를 푸는 데 비교적 덜 인색하다. 대학생의 경우 등록금 납입증명서를, 주부라면 해당 월 포함 2개월 간의 휴대폰비 납입 확인서 등을 사진으로 찍어 제출하면 된다.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지점이 없는 은행 특성상 기준에 해당하는 서류가 확인되면 2~3영업일 후에 제한을 풀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력이 짧아 소비자를 많이 확보해야하는 인터넷은행의 특성상 한도를 풀어주는 데 덜 까다롭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사들은 대부분의 대포통장이나 보이스피싱 사기가 지점을 보유한 금융기관을 통해 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항변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특히 금융취약계층이 많이 이용하는 농협, 우체국 등은 계좌 개설부터 까다롭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며 "피싱 사고가 발생하면 소비자 피해가 큰 데다, 회사가 받는 페널티도 작지 않다"고 했다.
한도제한 계좌로 사기 피해를 예방하는 효과도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신한은행은 입출금계좌 가입 후 일반계좌로 전환하기까지 총 두 단계를 거쳐야 하는 제도를 도입한 뒤 보이스 피싱 피해를 대폭 줄이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면 금융 시대에 맞게 금융 범죄가 진화하는 만큼 인터넷 전문은행도 한도 제한 요건을 강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최근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비(非)인터넷은행의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전년 대비 최소 43.3%(하나은행)에서 85.3%(신한은행) 준 반면, 카카오뱅크의 전년대비 피해액은 27.3%, 케이뱅크는 170.0% 증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인터넷은행 보이스피싱 피해가 늘어난 건 은행 규모가 커진 탓도 클 것"이라며 "악성 앱 설치를 강요하는 등의 방식으로 금융사기가 진화하는 만큼 대비도 강화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대훈/빈난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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