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결국 민주노총 요구대로…정부, 최저임금 근로자위원 바꾼다

입력 2021-05-19 18:05   수정 2021-05-20 01:08


지난 11일 새로 위촉된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중 한 명이 조만간 교체될 전망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정부가 자신들과 협의도 없이 위원을 임의로 제청했다며 변경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불가 입장이었으나 민주노총이 회의 불참 등 실력행사에 나서자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력행사 나선 민주노총
1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11일 위촉된 최저임금위 근로자위원 중 1명의 사퇴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최저임금위 구성을 놓고 양대 노총이 서로 더 많은 근로자위원을 차지하겠다고 ‘몽니’를 부리면서 위원 구성에 애를 먹었던 고용부가 결단을 내렸지만 민주노총의 사퇴서 제출에 따라 다시 대통령 재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구성된다.

민주노총은 18일 제2차 전원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회의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고용부 세종청사 앞에서 50여 명이 모여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이 정부에 항의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정부가 최근 2년간 낮은 인상률(2.9%, 1.5%)을 주도한 공익위원, 특히 박준식 위원장과 권순원 공익위원 간사를 유임시켰다는 것이다. 또 민주노총이 정부 통계상 ‘제1노총’으로 확인된 만큼 한국노동조합총연맹보다 근로자위원 추천권을 한 명 더 달라고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정부가 민주노총이 추천한 5명 중 1명을 배제시키는 과정에 자신들과 협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고용부 소속 근로자가 최저임금위원?
하지만 정부 측 설명은 다르다. 고용부는 근로자위원 선정을 앞두고 양대 노총이 모두 다섯 명씩을 추천해오자 양 노총 간 협의를 요청했으나 이렇다 할 답을 받지 못했다. 이후 민주노총 추천 인물 중 한 명을 배제하기로 결정한 뒤에도 추천 우선순위를 달라고 제안했지만 역시 명확한 답을 받지 못했다. 결국 고용부는 민주노총이 추천한 인물 중 적합도를 따져 4명을 청와대에 제청했고, 그대로 대통령의 위촉이 이뤄졌다.

이후 민주노총이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5명의 근로자위원에서 4명을 위촉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의견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고, 정부가 임의로 위원을 위촉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고용부가 배제한 인물은 민주일반연맹 소속 간부다. 배제 이유는 해당 인물이 고용부 중부고용노동청 소속 통계조사관이어서 최저임금위 근로자위원을 맡으면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의 실력행사는 통했다. 최저임금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 내부적으로는 산별조직 간에 위원을 맡는 순서 또는 배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로서는 고용부 소속 근로자라고 해서 최저임금위원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없는 이상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첫 회의부터 파행…심의 지연 불가피
민주노총의 회의 불참으로 최저임금위는 시작부터 파행을 겪었다. 지난 18일 회의는 새 위원 구성에 따라 위원장을 선출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을 통해 위원장 선출을 미뤄달라고 요구해 한때 정회가 되기도 했다. 또 향후 위원회 운영에 필수적인 운영위원회와 생계비·임금수준 전문위원회가 꾸려졌어야 했는데, 민주노총 불참으로 미완의 회의체만 가동하게 됐다.

이날 회의에서는 공익위원단의 민주노총 성토도 있었다. 권순원 공익위원 간사는 민주노총의 장외투쟁 및 항의성 ‘이메일 폭탄’을 언급하면서 “공익위원들이 심리적 압박과 개인 업무 수행상 물리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장외에서 공익위원을 상대로 한 문제 제기는 앞으로 금지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탁’이라며 “향후 장외 주장을 자제하고 위원회 내에서 토론이 이뤄지도록 협조를 부탁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작 민주노총은 토론장에 있지도 않았다.

최저임금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2차 회의는 들어오지도 않은 민주노총으로 인해 회의가 중단됐고, 공익위원단의 경고도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며 “민주노총은 스스로 제1노총을 자처하면서 그만큼의 책임을 다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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