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잉꼬부부와 '쇼윈도 부부'

입력 2021-05-19 17:26   수정 2021-05-20 00:18

‘긴 상이 있다/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좁은 문이 나타나면/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걸음을 옮겨야 한다/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다 온 것 같다고/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한 발/또 한 발’

함민복 시인이 노총각 시절, 장가가는 후배를 위해 쓴 시 ‘부부’다. 결혼이란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하고, 서로의 높낮이와 걸음의 속도까지 맞춰야 하는 ‘긴 상(床)’과 같다. 발을 맞추고 보폭을 조절하는 과정에 평생 반려의 지혜가 다 응축돼 있다.

금슬 좋은 부부는 말투와 걸음걸이, 얼굴 표정까지 닮는다. 톨스토이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듯이, 행복한 부부는 모두 ‘사랑·배려·헌신’이라는 덕목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반면에 남을 의식해서 행복을 가장하는 ‘쇼윈도 부부’에게는 수많은 불행의 핑계가 쌓여 있다. 최근 이혼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도 그랬다. 모범적인 부부의 전형으로 보였던 것과 달리 그는 “애정 없는 결혼이었고, 끝난 지 상당 기간이 됐으며, 별거 중이었다”고 친구들에게 털어놨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일생을 함께 살아가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남녀의 언어습관과 사고방식, 공간지능은 다르다. 공통점은 동일한 종(種)에 속한다는 것뿐이라는 말도 있다. 이혼 사유 1위는 늘 ‘성격 차이’다. ‘경제 문제’와 ‘배우자 부정’보다 훨씬 높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주관적인 부부 문제를 객관적인 남녀 문제로 바꿔 보면 해답이 보인다”고 조언한다. 영국 역사학자 토머스 풀러가 “결혼 전엔 눈을 크게 뜨고 결혼 후엔 반쯤 감으라”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일은 부부의 날. 서로 눈을 반쯤 감아주는 배려와 함께 지나온 길의 여독을 풀어주는 사랑의 손길이 절실한 날이다. 시 한 편을 읽어주는 것도 큰 힘이 된다. 함민복의 ‘부부’에 이어 조명의 시 ‘세족’을 함께 음미하면 더욱 좋다. ‘바다가 섬의 발을 씻어 준다/돌발톱 밑/무좀 든 발가락 사이사이/불 꺼진 등대까지 씻어 준다/잘 살았다고/당신 있어 살았다고/지상의 마지막 부부처럼/섬이 바다의 발을 씻어 준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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