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마당을 아낌없이 시민에게…절제로 빚어낸 어머니 교회

입력 2021-05-20 17:46   수정 2021-05-25 13:50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서 광화문역으로 이어지는 새문안로를 지나다 보면 육중한 사각빌딩 숲 사이에 곡선과 직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건물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2019년 완공된 새문안교회다. 이 교회는 1887년 언더우드 목사가 세운 ‘한국 장로교 최초의 조직교회(담임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를 갖춘 교회)’라는 상징성 때문에 기독교인들 사이에선 ‘어머니 교회’로 불린다.

교회 건축물치곤 상당히 독특한 외관 때문에 준공된 해인 2019년 영국 디자인 전문 잡지사인 디즌이 선정한 ‘세계 10대 교회 및 예배당 건축물’로 선정됐다. 같은 해 미국 AMP 건축마스터상을 받는 등 최근 세계가 새문안교회에 주목하고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건축물
새문안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종교시설이라는 점을 설계에 과감히 시도했다.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에 있는 종탑 부분은 광화문 사거리에서도 잘 보이도록 앞으로 불쑥 나와 있지만 본당 건물은 U자 형태로 깊숙이 물러나 있다. 원래 설계상 인도로부터 10m만 뒤에 있어도 되지만 교회는 이보다 30m 더 뒤로 건물을 집어넣었다. 교회 측은 그 덕에 마련된 넓은 앞마당을 시민에게 휴식공간이자 광장으로 개방했다.

공공성을 강조한 설계는 1층에서도 느껴진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마주보게 되는 새문안홀은 일반인도 소규모 공연 용도로 쓸 수 있도록 개방했다. 설계를 맡은 최동규 서인건축 대표는 “서양에서 교회는 오랜 기간 도시와 공동체 생활의 중심공간으로 쓰여 왔는데 한국에선 그런 사회적 기능이 어느 순간 사라져가고 있다”며 “설계 당시 ‘새로 짓는 교회는 그런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이수영 전 담임목사의 조언을 충실히 담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과거와 현재의 조화
새문안교회는 정면에서 건물 앞면을 바라보면 S자 형태의 곡면 벽이 건물 안으로 움푹 파고든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어머니가 팔을 벌려 품어주는 모습을 현대적으로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건물 앞쪽에 창이 하나도 없다는 점도 독특하다. 대신 그 자리에 구약성서 39권을 의미하는 39개의 작은 조명이 자리한다. 또 광장에 있는 27개의 불빛은 신약성서 27권을 상징한다. 밤이 되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하수처럼 은은한 빛들이 건물을 수놓는다.

옛 교회의 모습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도 건물에 담겨 있다. 화강석의 일종인 사비석으로 층층이 쌓아 올려 옅은 베이지색을 띠는 외장과 달리 1층 새문안홀은 붉은 벽돌로 지었다. 1972년 지어졌던 다섯 번째 예배당 모습을 축소·복원했다. 철거 당시 벽돌과 스테인드글라스, 한옥 창문 무늬의 장식 등 일부 자재를 재활용해 옛 교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웅장함보다는 절제미
새문안교회는 지하 6층~지상 13층에 연면적 3만1900㎡ 규모다. 대지면적이 4200㎡에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 비율)은 상한선인 600%에 미치지 못하는 380% 정도다. 건물을 더 높이, 더 넓게 지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게 서인건축 측 설명이다. 교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본당 역시 그런 절제미가 드러난다. 총 2840석에 이르지만 내부 구조를 직선 대신 부채꼴 모양의 곡선으로 설계해 안으로 들어섰을 때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든다. 일반적인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주렁주렁 매달린 대형 스피커는 외벽과 같은 색깔로 감췄고 대형 스크린을 없애는 대신 언제든 벽 위에 화면을 띄울 수 있도록 해 산만하지 않고 오래도록 차분함이 유지된다. 또 전자오르간 대신 유럽 성당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했다. 모두 개신교회가 원래의 경건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고안된 설계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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