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가 바람에 살랑거립니다. 호랑이의 꼬리를 닮았다는 하얀색의 범꼬리꽃입니다.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에는 스님과 동자의 전설이 얽혀 있는 동자꽃이 보입니다. 여기는 강원 태백의 대덕산 분주령입니다. 분주령(1080m) 금대봉(1418m) 대덕산(1307m)을 거쳐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로 이어지는 능선은 국내 최고의 야생화 군락지입니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고 해서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곳이죠. 제법 일찍 다가온 여름의 초입인데도 숲길에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하늘은 맑고 눈에 보이는 곳마다 야생화가 피어 있어 마음까지 환해집니다. 미국의 명문장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야생화는 단 한순간도 햇빛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날씨에 감사하는 것은 인간보다 꽃”이라고 말했습니다. 햇살 아래 빛나는 야생화의 흔적을 찾아 여름 여행을 떠나볼까요.
야생화 천국으로 알려진 두문동재에서 분주령까지의 트레킹 구간은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가 날아다니고 꼬리치레도롱뇽, 참매를 비롯해 대륙목도리담비, 오소리, 고라니, 청설모, 방패벌레, 그림날개나방, 꽃등에, 맵시벌 등 다양한 동물이 함께 살고 있다. 대성쓴풀과 모데미풀, 한계령풀 같은 희귀식물도 발견된 곳이다.
분주령 트레킹은 벌써 여섯 번째인데도 늘 새로운 느낌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길을 걸으면 신선한 숲의 공기가 산뜻하게 다가온다. 길 양쪽으로 야생화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분주령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갈래길이 나온다. 한쪽은 금대봉 방향, 또 한쪽은 분주령 방향이다. 산불조심 기간이어서 막혀 있는 금대봉을 뒤로하고 분주령 방향으로 걷다 보면 확 트인 산봉우리가 보인다.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분주령, 오른쪽 방향으로 솟아 있는 것이 대덕산이다. 나무데크로 이어진 내리막길이 제법 길게 이어진다.
분주령으로 가는 길섶에서 볼 수 있는 여름꽃만 해도 범꼬리를 비롯해 동자꽃, 요강나물, 할미밀망, 산꿩의다리, 좀꿩의다리, 개병풍, 노루오줌 등 족히 30종이 넘는다. 정겹고 미려한 수많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다.
이름이 재미난 꽃도 부지기수다. 할미밀망, 사위질빵, 쥐털이슬, 산꿩의다리 등은 듣기만 해도 절로 웃음꽃이 필 것만 같다. 꽃들 사이로 사향제비나비가 사뿐히 내려앉고 벌들이 웅웅거리며 주변을 맴돈다. 헬기장 옆 길가에는 개망초도 자리를 잡았다. 국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는 낯익은 식물이지만 구한말에 도입된 북미 원산의 신귀화식물이다. 원래 이름은 망초인데 ‘개’자가 앞에 붙은 것은 왜일까. 망초는 왜풀, 개망풀 등으로도 불리는데 ‘왜풀’이란 이름은 개망초가 일본을 거쳐 도입됐음을 유추하게 한다.
두문동재에서 약 1시간30분을 걸으니 평평하고 넓은 분지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분주령이다. 원래 분주령은 정선과 태백 사람들이 만나 분주하게 물건을 교환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문동재에서 분주령까지가 평평한 산책길 같았다면 분주령에서 대덕산까지 가는 길에선 다리에 힘이 제법 들어간다. 능선을 따라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드디어 대덕산 정상이다 바람결에 색색의 야생화가 흔들린다. 대덕산 정상에서 검룡소로 내려가는 길목에도 흑쐐기풀, 짚신나물 등 갖가지 토종 야생화들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어느덧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다. 두문동재에서 출발한 지 대략 4시간30분. 꽃향기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길이 끝났다.
■ 여행 팁
금대봉~대덕산 야생화 감상 코스는 둘로 나눌 수 있다. 두문동재~금대봉 구간은 산책 같은 코스로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다. 야생화와 함께 본격 산행을 하고 싶다면 대덕산 코스로 가면 된다. 대략 4~6시간 걸린다. 트레킹을 마친 뒤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대개 검룡소 주차장에 차를 두고 태백지역의 콜택시를 타고 두문동재로 가서 트레킹을 시작하는 게 좋다. 야생화 트레킹로는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관광보존지역이다. 1년에 두 번 출입을 통제한다. 2월 15일~5월 15일, 11월 1일~12월 15일 산길이 폐쇄되니 이 기간은 피해야 한다. 야생화 트레킹을 하려면 국립공원공단 태백산 예약통합시스템에서 미리 예약해야 한다. 하루 300명만 입산할 수 있다.
태백=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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