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축사가 가까워지는데 냄새라고는 보리 건초에서 나오는 특유의 향뿐이다. 2000마리를 사육하는 공간엔 클래식이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한우 축사의 상징과도 같던 ‘쇠파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축사 주인은 농장과 담도 두지 않고 옆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최근 방문한 한우 브랜드 민속한우의 경북 안동 농장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민속한우는 일본 ‘와규(和牛)’에 도전장을 낸 토종 축산업체다. 국내에서 고급 소고기의 기준으로 알려진 ‘마블링’이 아니라 세계 미식가들의 판단 척도인 ‘올레인산’ 함유량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이에 비해 한우 등급 판정 기준은 육량과 육질만으로 판단한다. 맛에 관한 기준은 없다. ‘투뿔(1++)’은 흔히 ‘꽃이 피었다’고 표현하는 ‘마블링’의 정도로 정해진다. 권혁수 민속한우 대표(사진)는 “한우도 글로벌화를 이루려면 올레인산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며 “민속한우는 올레인산 50% 이상의 한우 출하 비중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민속한우는 경북 56개 축산 농가가 연합해 약 3만 마리를 사육한다. 군위엔 첨단 도축·가공시설(LPC)을 운영하고 있다. 민속한우가 와규에 도전장을 낼 수 있는 것은 일관된 품질의 한우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어서다.
입식(송아지를 축사에 넣는 것)에서부터 사육 및 도축, 가공, 출하까지 일관 시스템을 구축한 국내 유일의 농업기업이다. 권 대표는 “56개 농가의 사육 방식을 100% 통일함으로써 어디서 출하되든 똑같은 품질의 한우를 내놓고 있다”며 “본사가 금융을 지원하고 일선 농가와 이익을 공유하는 시스템 덕분”이라고 말했다. 무이자 혹은 저리 대출로 농가를 지원하는 농협중앙회와 달리 ‘인센티브’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라는 게 권 대표의 설명이다.
GS리테일이 본격적으로 민속한우를 지원하기 시작한 건 2012년이다. 당시 상품본부장이던 허연수 부회장은 ‘GS=한우 맛집’이라는 공식을 만들고 싶어 했다. 당시 유통업계에선 처음으로 선도금 명목으로 상생 대출 15억원을 지원했다.
2010년 구제역 파동으로 1000마리가량을 땅에 묻어야 했던 권 대표는 GS리테일의 결단 덕분에 재기에 성공했다. 2014년에도 20억원의 선도금을 지원받았다.
대기업과의 상생은 선순환 고리로 이어졌다. 자금이 넉넉해지자 민속한우는 친환경 축사를 만드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민속한우 안동 본사 농장(2000마리 사육)만 해도 가로 5m, 세로 10m 공간에 소 7마리를 키운다. 마리당 차지하는 공간이 2.1평 규모로, 일반 한우 농가 밀집도의 절반 수준이다. 민속한우의 1+등급 출현율은 75%다. 전국 평균 출현율이 50~6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품질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민속한우는 인근 안동생명과학고와 함께 국내 최초로 육가공학과 개설을 추진 중이다. 군위 LPC에 근무하는 스무 살 청년들의 초봉은 연 3900만원이다. 권 대표는 “대기업의 지원을 지역과의 상생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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