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 급등에 따라 건강보험료 피부양자에서 탈락해 오는 11월부터 새로 보험료를 내야하는 사람이 5만명을 웃돌 것으로 추산됐다. 서울 시내 웬만한 아파트를 한 채만 보유해도 연간 수백만 원의 건보료를 내야하는 것이다. 소득이 없는 은퇴자·노인의 건보료 납부에 대한 불만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건강보험 피부양자 탈락 현황 및 요인’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재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올 연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하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5만1268명으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이유로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한 인원(2만6088명)의 두 배 수준이다. 서울 지역의 피부양자 탈락 인원도 지난해 1만3720명에서 올해 2만3600명으로 72.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피부양자 자격을 잃으면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11월부터 건보료를 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은 직장 가입자들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부모, 자녀 등 직계 가족들 중 일정한 소득과 재산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에게는 건보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피부양자 자격을 준다. 하지만 올해는 재산 측정 기준인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피부양자 자격 상실자가 전례없는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들은 올해 건보료 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증가 부담도 떠안게 된다.
유 의원(사진)은 “집을 한 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세, 종부세에 이어 건보료 부담까지 지우는 건 징벌적 조세 정책”이라며 “건보료 피부양자 자격을 따질 때 재산 요건은 빼고 소득 요건만으로 심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계동 아파트 보유세 86만원 오르는데, 건보료는 290만원
정수연 한국감정평가학회장(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23일 “집값과 공시가격 인상에 따른 건보료 등 복지혜택 상실의 충격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인상 충격에 비할 바 없이 크다”며 이같이 우려했다. 집값과 공시가격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사전에 바로잡지 못하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에 버금가는 충격이 온다는 게 정 교수의 진단이다.
서울 지역은 이런 임계점을 이미 지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집값 상승과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의 효과로 서울지역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2018년 10.19% △2019년 14.01% △2020년14.73% △2021년 19.89% 등 4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직전 4개년(2014~2017년) 평균은 3.96%에 불과했다. 2016~2020년 4~6%에 머물던 전국의 공동주택 공시가격도 올해 19.05%로 튀었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연말마다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당한 가입자들의 시위나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데 올해는 집값과 공시가격 인상 여파로 그 강도가 훨씬 셀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 의원은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재산세, 종부세, 건보료 3종세트가 한꺼번에 오른다”며 “중장기적으로 재산 요건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라고 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도 2016년 4월 총선 직후 당시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보험료 부과 기준을 소득 기준으로 단일화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후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지 않고 있다.
좌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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