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인 '거품' 유니콘과 '진짜' 유니콘이 구분되는 시기가 올 겁니다. 더 강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해야 합니다.”
벤처캐피털(VC) 업계 베테랑인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사진)는 20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 매체 마켓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스타트업 간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 벤처 붐은 트렌드의 변화... '딥테크' 주목
박 대표는 최근의 벤처투자 열풍을 ‘변화’에 익숙해져가는 과정이라고 바라봤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며 생활 양식이 바뀐 것도 하나의 예시라는 설명이다. 그는 “코로나19가 끝난다고 해도 과거의 트렌드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며 “언젠가는 이 열풍에 조정이 오겠지만 메가 트렌드의 변화는 방향성을 확실히 잡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들의 밸류에이션(가치 평가)이 과도하게 높다고 느끼는 것은 변화의 ‘방향’이 아닌 ‘속도’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벤처 붐이 속도 조절을 거치면서 스타트업 간 ‘옥석 가리기’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변화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기업들은 도태될 것으로 봤다. 다만 20년 전 닷컴 버블 때처럼 산업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새로운 변화의 축에 맞춰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며 “다만 일부 기업의 거품이 빠지더라도 변화에 적응한 기업들은 살아남아 시장을 이끌어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떠오르는 분야로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딥테크(기저기술) 산업에 주목했다. 지금은 콘텐츠·플랫폼 분야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지만 향후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집약한 딥테크 스타트업이 뜰 것이라는 전망이다. LB인베스트먼트 역시 딥테크 분야 투자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박 대표는 “화려한 플랫폼 기업만 주목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딥테크 기업들이 차곡차곡 성장하고 있고, 이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스마트폰이 추동하던 혁신의 흐름이 인공지능(AI) 등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 빅히트, 카겜, 컬리 발굴
1996년 설립돼 500곳 이상 기업에 투자한 LB인베스트먼트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해오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을 초기에 발굴해 과감히 베팅한 뒤, 팔로온(후속 투자)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통상 큰 규모의 투자를 하지 않는 시리즈A 라운드에서도 수십억원대의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박 대표는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는 그만큼 투자자도 리스크를 지고 가야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투자 철학을 확립해 온 LB인베스트먼트의 포트폴리오는 화려하다. 하이브(옛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컬리(마켓컬리), 무신사, 직방, 카카오게임즈 등이 LB인베스트먼트의 손을 거쳤다. 특히 지난해 상장한 카카오게임즈에는 설립 초기인 2015년 상환전환우선주(RCPS) 형태로 50억원을 투자한 뒤 원금 대비 10배가 넘는 516억원에 엑시트(회수)하는 성과를 거뒀다.
유망 기업들과 초기 투자부터 후속 투자까지 함께하다 보니 운용하는 펀드의 규모도 큰 편이다. 지난해 12월에는 3106억원 규모의 ‘LB넥스트유니콘펀드’를 결성했다. 회사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의 펀드다. 올해 1000억원 이상 소진하는 게 목표다. 이로써 운용자산(AUM)은 1조원을 넘어섰다. 박 대표는 “미래의 유니콘을 만든다는 이름에 걸맞게 ‘스케일업’에 초점을 맞췄다”며 “초기 단계 기업에도 40, 50억원씩 과감히 투입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LB인베스트먼트는 올해 넥스트유니콘펀드를 통한 집중 투자에 나선다. 하반기에는 세컨더리 펀드 조성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내년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준비도 시작한다. 앞서 미래에셋증권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했다. 박 대표는 "모험자본을 공급한다는 VC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업계를 이끌겠다"라고 말했다.
김종우/황정환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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