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칼럼] 바이든의 큰 정부, 문재인의 큰 정부

입력 2021-05-24 17:35   수정 2021-05-25 00:14

이 정부 유력인사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 난데없는 주장을 듣게 됐다. “보수 언론에서 자꾸 큰 정부를 비판하는데, 미국 바이든 정부도 큰 정부를 선언하지 않았냐?”

바이든 정부가 재정을 쏟아붓고, 대기업 증세에 나서는 걸 예로 들면서 “거봐, 미국도 가는 방향을 우리도 하는 건데 뭐가 문제냐”는 주장이다. 큰 정부 사대주의처럼 들렸다. 견강부회, 아전인수 같은 사자성어를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이든 민주당 정부가 큰 정부를 선언한 것은 맞다. 바이든이 취임 직후 수조달러 규모의 뉴딜 정책을 발표한 것을 두고 ‘루스벨트가 90년 만에 부활했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레이건 이후 40년간 이어온 작은 정부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럼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바이든의 큰 정부와 문재인의 큰 정부는 과연 같은 것일까. 쓰는 용어가 같다고 실체도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첫째, 재정에 대한 접근법부터 다르다. 바이든 정부는 뉴딜 인프라 구축에 총 4조달러 가까이 투입하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차변에는 항목별 투입 예산, 대변에는 재원조달 방안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법인세율 인상 등 논란이 된 대규모 세수확보안도 대변에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루스벨트의 뉴딜을 본떠 지난해 160조원 규모의 야심찬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하지만 124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 어딜 찾아봐도 돈을 쓰겠다는 내용만 가득하지, 어떻게 조달하겠다는 대목은 없다. 작년부터 65조원 규모의 네 차례 추경을 하면서는 대부분 적자국채 발행에 의존했다.

차라리 미국처럼 세금을 더 거둬 인프라와 복지 확충 재원으로 쓰겠다는 게 솔직한 정부의 자세에 가까울지 모른다. 세금으로 충당하면 잘 써야 한다는 압박이라도 있다.

둘째, 재정 씀씀이도 다르다. 미국은 4조달러 대부분을 도로 항만 등 산업 인프라와 교육 보육 인프라 구축에 쏟아붓는다. 경제가 중장기 성장 궤도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마중물 예산이다. 우리도 디지털과 그린 분야 인프라 구축을 내세우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예산의 상당부분이 단기 일자리 확충이나 직접 현금 지원에 쓰인다.

셋째, 규제 접근법도 다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시장원리를 지킨다. 규제로 인해 기업 리스크가 커지는 것은 최소화한다. 바이든 정부 들어 가장 강해진 환경 규제가 대표적이다. 기업활동 제약보다는 기업의 탄소저감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그걸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먹거리도 찾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둔다. 규제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려는 세밀한 정책적 고민이 엿보인다.

반면 우리 정부는 기본 시각이 ‘기업=규제해야 할 대상’이다. 기업 리스크는 뒷전이고, 우선 규제부터 하고 본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든 관심이 없다. 부작용 우려에도 대안없이 밀어붙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법 등이 모두 그렇다.

마지막으로 인재 등용에 차이가 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주류경제학자 출신으로 시장친화적 인물이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역시 벤처캐피털 창업가 출신으로 기업을 속속들이 아는 전문가다. 바이든의 가장 가까이에서 경제정책을 보좌하는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인 브라이언 디스는 투자회사 블랙록 출신이다.

반면 우리는 초기부터 시장 경험이 없는 이념가들로 참모진을 채웠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미국 역사상 대표적 자유주의자로 대통령 재임 시절 연방정부의 권력 독점을 스스로 견제했던 토머스 제퍼슨은 일찍이 이런 경고를 날렸다.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정도로 큰 정부는 당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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