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보유할 목적으로 비트코인만 적립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이더리움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 10% 정도 새로 담았어요.”
한 암호화폐거래소 대표에게 어떤 코인에 투자하고 있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는 디지털 자산의 미래를 누구보다 확신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투자처’로서의 알트코인(비주류 암호화폐)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게 문제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마트 대표가 이마트에 진열된 음식을 다 먹어봐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비트코인조차 시시하다며 알트코인으로 ‘한 방’을 노리는 수많은 개미들이 떠올라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의 임직원 역시 알트코인에 투자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못 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테더까지 딱 3종만 거래를 허용하는 내부 규정 때문이다. 이건 알트코인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혹시 있을지 모르는 내부자 일탈을 막기 위한 장치다. 다만 알트코인으로 쓴맛을 보는 사람 중에 업비트 직원은 없을 것이란 점은 확실해 보인다.
한국 투자자들의 암호화폐 거래는 90% 이상이 ‘잡코인’에 쏠려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비중이 크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투자자들은 잡코인의 무시무시한 변동성에 오히려 매력을 느꼈고, 거래소들이 ‘백화점식 상장’으로 이들의 입맛을 맞춰온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 거래소에선 최근 6개월 수익률이 1000%를 넘는 알트코인만 12종에 이른다. 2945%(쎄타퓨엘) 2220%(칠리즈) 1540%(메디블록) 1506%(마로) 1322%(비트토렌트) 등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하지만 높은 변동성이 경이적인 수익률로 이어지는 것은 대세 상승장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암호화폐 대폭락장이 펼쳐진 지난 19일과 24일을 보자. 비트코인이 15% 떨어지는 동안 잡코인은 50% 넘게 고꾸라졌다. 올초 60%를 넘던 비트코인의 시가총액 비중은 이달 중순 40% 아래로 떨어졌다. 개미들이 ‘돈 복사’를 꿈꾸며 알트코인에 돈을 쏟아부을 때 진짜 고수들은 돈을 뺐다. 비대해진 알트코인 시총 비중을 시장이 꼭지에 가까워졌다는 징후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투자의 기본은 내가 투자하려는 대상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가격이 변하는 이유를 추정이라도 할 수 있다. 잡코인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기사를 쓸 때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입 닫으라”는 댓글이 돌아온다. 그래도 말은 해야겠다. 알트코인 매수 버튼, 너무 자주 누르지 마시라. 해외 기관들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외에는 섣불리 담지 않는다. 모건스탠리는 자산가들의 돈을 굴려줄 때 암호화폐 투자 비중이 2.5%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