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에선 지난 4월 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되면서 매매거래가 까다로워졌다. 그러자 매도인이 “집을 사는 게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매수자에겐 집을 보여주지 않겠다”며 이같은 확인서를 받겠다고 한 것이다. 박 씨는 “현재 강남 부동산시장이 집주인 우위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현실은 더했다”고 씁쓸해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등 강남지역의 아파트 매수자들이 매물 구하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는 게 불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실수요자는 많고 매물이 적어 매도인 우위시장이 펼쳐지고 있어서다. 강남 집주인이 매매거래에 앞서 매물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미리 자금출처를 소명할 수 있다는 것을 증빙하는 서류를 요구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26일 압구정동 인근 현대아파트 등 재건축 단지를 주로 중개하는 A공인 관계자는 “워낙 매물이 없고 앞으로 계속 값이 오른다는 전망이 많아서 그런지 집주인들이 쉽게 집을 보여주려하지 않는다”며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이 있는 매수자에게만 매물을 공개하겠다는 집주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이후 이날까지 계약 및 신고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아파트 매매 거래는 한 건도 없다. 4월 1~26일에 31건의 거래가 이뤄진 것과 비교하면 거래가 완전히 끊긴 분위기다. 하지만 현장에선 “투자수요는 꺾였지만 실수요는 아직 살아있고 모든 수요가 줄었다고 보긴 어렵다”, “나오는 매물이 거의 없다” 등의 얘기가 나온다.
실제 개별 단지의 호가는 계속 상승 흐름을 보이는 중이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압구정 현대9차나 11차, 12차 등의 183㎡ 규모 매물의 호가는 최대 70억원까지 치솟았다. 같은 동의 비슷한 층수의 아파트 매물이 지난해 말 52억원에 신고가 거래를 한 것과 비교하면 5개월새 호가가 18억원이나 폭등했다. 현대1·2차 아파트도 196㎡가 65억원에 매물이 나오면서 올 3월 매매가 64억원보다 호가가 1억원 비싸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통계 지표에서도 이 지역 아파트값은 계속 오름세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지난주 강남구 아파트값 상승률은 0.13%로 거래허가구역 지정 직전인 지난달 26일(0.13%)과 동일하다. 압구정 T공인 대표는 “집주인들이 조급하지 않다”며 “팔 사람은 거래허가제 이전에 다 팔았고 지금 남은 매도인들은 앞으로 값이 더 오를테니 천천히 매매해도 된다는 태도”라고 전했다.
앞서 토지거래허가구역에 지정된 대치·삼성·청담·잠실동 등 다른 강남지역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거래는 줄었지만 호가는 상승하면서 집값은 오히려 폭등하고 있다. 대치동 은마 전용 101㎡는 지난 4월 22억4500만원에 팔리며 최고가를 찍었다. 작년 6월 평균 19억원에 거래됐던 것에 비해 3억원 이상 상승했다. 잠실동 우성1·2·3차 104㎡은 지난 4일 21억4000만원에 새주인을 찾았다. 역시 신고가 거래다.
대치동 학원가 인근 Q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지역에서도 매물을 보려면 자금소명이 가능하다는 점을 미리 밝혀야한다”며 “거래가 쉽진 않지만 실수요자들은 더 오르기 전에 매수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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