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황량한 사막이 펼쳐진다. 저승사자처럼 보이는 안내자가 등장해 사막을 떠돈다. 그 위로 천천히 누우면 땅이 흔들리며 몸 위로 흙이 쌓이기 시작한다. 지난 1월 서울 논현동 플랫폼엘에서 펼쳐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의 ‘이중으로 걸어 다니는 자’란 작품이다. 가상현실(VR) 공연으로 진행돼 관객들이 직접 VR 기기를 쓰고 참여했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삶에서 죽음의 세계로 가는 과정을 체험하며 인생의 의미에 대해 되돌아봤다.
국내 공연계에도 메타버스 바람이 불고 있다. 크기가 제한된 무대를 뛰어넘어 시공간을 확장할 수 있고, 관객들에게 참신하고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국악, 클래식 등 대중의 심리적 장벽이 높은 장르에서도 적극 나타나고 있다. 국립국악원은 지난해부터 유튜브 채널을 통해 국악, 사물놀이, 기악, 창극 등 37개 레퍼토리로 구성된 VR 공연(사진)을 선보이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이 무대 위 중간에 직접 서서 객석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화면이 펼쳐진다. 이용자는 360도로 방향을 회전하며 연주자의 손끝, 무용가의 세세한 동작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수동적인 관람이 아니라 적극적인 관람을 통해 전통예술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하는 전략이다. 네덜란드 일간지 ‘드 그로네 암스테르담’은 “코로나19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는 가운데 한국의 국악은 발전하고 있다”며 “침체된 전통예술계에 VR이 구원자로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공연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도 메타버스 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지난해 열린 ‘서울아트마켓’ 사례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로 세계 공연 관계자들이 참석하기 어려워지자 서울아트마켓은 ‘버추얼 팸스(Virtual Pams)’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마련했다. 공연 관계자들은 온라인으로 접속해 각자의 아바타로 이곳에 출품된 각국 공연의 쇼케이스를 관람했다. 코로나19 이전 오프라인 행사에선 매년 1500여 명이 방문했으나, 버추얼 팸스엔 3000명이 넘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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