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금감원 행정편의주의 이번엔 바뀔까

입력 2021-05-26 18:17   수정 2021-05-27 00:16

금융감독원에는 제재심의위원회가 있다. 금감원장의 자문기구로서 금융회사와 임직원의 법규 위반을 제재한다. 제재와 관련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라고 할 수 있다. 소속 위원들의 한마디가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회의장 밖에서는 사견조차 밝히지 않는 게 관례다.

하지만 최근 제재심 위원 중 일부가 특정 사안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는 말이 업계에 흘러다니고 있다. 한 위원이 금감원의 행정편의주의를 비판했다는 게 골자다. 옵티머스 펀드 분쟁조정안을 두고 금감원이 판매사인 증권사에 전액배상을 권고한 것은 문제가 많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위원은 “판매수수료로 17억원을 받았는데 3000억원을 배상하라는 것은 법적으로도 해석과 논란의 여지가 크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징계하는 것을 두고 “제재심 내에서 과도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가 제재심 결정 자체를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회의뿐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도 재차 강조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증권사의 잘못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금감원의 처분이 비판받는 이유는 제재 수위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NH투자증권 사례만 봐도 그렇다. 옵티머스 사태가 터진 데는 판매사(NH투자증권) 책임이 크지만 수탁사인 하나은행과 사무관리사인 한국예탁결제원의 잘못도 전혀 없다고 할 순 없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판매사에 모든 책임을 지우는 선택을 했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판매사가 모두 배상하고 당사자들끼리 소송으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취지였다. 관리·감독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고 분쟁조정을 조기에 끝내려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란 비판도 나온다.

행정기본법이 정한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행정기본법 제10조는 제재할 때 최소한의 한도에 그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잘못한 만큼 처벌하고, 징계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속운전을 했다고 억대의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금감원도 관리·감독 실패의 책임을 비켜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감사원이 일선 직원부터 임원진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감사 결과는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증권사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판매사의 책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 같다.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금감원도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건 징계 카드를 남발하는 심판관이 아니라 질서를 공정하게 유지하는 감독기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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