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동북아 '미사일 삼국지'

입력 2021-05-26 17:10   수정 2021-05-27 00:21

우리나라가 국산 미사일 ‘백곰’의 시험발사에 성공한 것은 1978년 9월 26일이었다. 당시는 주한미군 감축으로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었다. 남북한 간 충돌을 우려한 미국은 미사일 개발에 제동을 걸었다. 한국은 미국의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사거리 180㎞, 탄도중량 500㎏ 제한’에 합의했다.

이 지침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네 차례 개정됐다. 북한은 1970년대 미사일 개발에 착수해 1980년대에 ‘스커드-B’(사거리 300㎞)와 ‘스커드-C’(500㎞)를 실전 배치했다. 1990년대에는 사거리 1300㎞의 ‘노동’과 첫 장거리(2500㎞) 미사일 ‘대포동 1호’를 개발했다. 2016년부터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발사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백곰’의 후신인 ‘현무(玄武)’ 시리즈를 통해 탄도중량과 사거리를 조금씩 늘려 오다가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련 제한을 모두 푸는 데 합의했다. 이로써 한국의 미사일 사정권은 북한 전역뿐 아니라 중국 베이징과 일본 도쿄까지 넓어졌다. 중국이 한국을 겨냥한 수백 기의 미사일을 배치한 상황에서 우리도 대응 역량을 갖추게 된 것이다.

중국은 ‘둥펑(東風)’ 등 중거리 미사일만 약 3000기 보유하고 있다. 태평양을 향한 1만8000㎞ 해안에 지대공과 크루즈 미사일 발사대를 촘촘하게 배치했다. 군비 지출 규모도 미국에 이은 2위로, 동북아 지역의 안보 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이 한국 미사일 제한을 풀면서 중국의 세력 확산을 막는 전략을 함께 구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주변국이 반발할 수도 있지만, 한국이 국제 규범을 잘 지켜온 나라이기에 주변국과의 마찰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내심 못마땅한 중국도 사드 배치 때처럼 노골적으로 반응하진 않고 있다. 자주국방이야말로 그들이 늘 주장하는 ‘내정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미사일 제한 해제로 한국은 중장거리 미사일과 함께 고체연료·우주로켓 개발까지 가능해졌다. 한·미 정상은 민간 우주탐사와 과학, 항공 연구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이제 한국과 북한, 중국을 둘러싼 ‘미사일 삼국지’는 글로벌 패권 경쟁이라는 큰 그림 속에 드넓은 우주로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신기술과 외교력 경쟁도 그만큼 더 치열하게 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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