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과 한국은행이 한은 화폐박물관(옛 조선은행 본점) 머릿돌(정초석·사진)에 새겨진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을 없애지 않고 남겨두기로 했다.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그대로 둬야 한다는 국민·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2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위원회는 지난 25일 회의를 열어 한은 화폐박물관의 머릿돌을 유지하고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위원회는 조만간 추가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머릿돌 주변에 설치할 안내판 문구·설치 위치·크기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위원회가 여러 차례 심의를 거쳐 머릿돌을 보존하고 주변에 안내판을 세우기로 가닥을 잡았다”며 “안내판 문구는 이르면 다음달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도 문화재청이 결정한 대로 정한 안내판을 세우기로 방침을 정했다. 한은 관계자는 “안내판 문구 내용과 크기를 어떻게 할지만 남았다”고 했다.
한은 머릿돌 논란은 지난해 10월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제기한 의혹에서 출발했다. 전 의원은 서울 중구 한은 화폐박물관 머릿돌에 새겨진 ‘정초(定礎)’ 글씨가 1905년 을사늑약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이라며 1918년 조선은행 간행물을 제시했다. 문화재청은 전 의원의 의혹 제기 이후 서체 관련 전문가 3명으로 자문단을 구성하고 현지 조사를 벌여 머릿돌 글씨가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이 맞다고 확인했다. 문화재청은 당시 “머릿돌에 새겨진 ‘定礎’ 두 글자는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쓴 획 등으로 볼 때 이토 히로부미의 필체 특징을 갖고 있어 그의 글씨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머릿돌 처리를 위해 문화재청에 ‘보존 및 안내판 설치’ ‘석재로 덮기’ ‘철거 후 전시’ 등 세 가지 관리 방안을 제출했다. 문화재청은 머릿돌 처리를 위해 ‘흔적 지움’과 ‘안내판 설치’ 두 가지 문항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안내판 설치가 52.7%로 1위를 차지했다. 문화재청과 한은은 설문조사 등을 참고해 심의를 거쳐 머릿돌을 유지하기로 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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