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를 보유하고 있는 직장인 A씨는 출근 이후 불안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퇴근하자마자 장거리 이동을 해야하는데, 근무 시간 내내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를 살린 건 "픽업 충전 서비스를 이용해보라"는 동료 B씨의 조언. A씨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픽업 충전 서비스를 예약했고, 차 키를 담당자에게 주고받았다. 퇴근 직후 시동을 걸어보니 그의 차량은 80%까지 충전돼 있었다.
고객의 전기차를 대신 충전해주는 충전대행 사업이 하나둘 시작되고 있다. 전기차 제조사들도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전기차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충전소 수는 이에 미치지 못한 데 따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충성 고객'을 확보해 빠르게 늘고 있는 전기차 수요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아는 전기차 픽업 충전 서비스인 '이온'을 출시하고 다음달 15일까지 시범운영한다고 27일 발표했다. 고객이 주차한 차량을 픽업해 가까운 충전소에서 충전한 뒤 원하는 위치에 갖다놓는 서비스다. 전기차 EV6가 출시되는 7월에 맞춰 정식 서비스 오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온 서비스는 도서·오지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24시간 운영한다. 전용 앱에서 원하는 날짜·시간, 차량 픽업 위치, 차량 수령 위치를 설정하면 된다. 서비스 이용 3시간 전까지 예약해야 한다. 시범운영 기간 이용 금액은 4만원으로 선착순 750명은 1회 무료이용 가능하다. 정식 서비스를 출시할 땐 가격을 더 낮출 계획이다. 현재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만 쓸 수 있고 향후 iOS 스마트폰으로도 확대한다.
현대차는 지난 10일 '픽업앤충전'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온과 마찬가지로 차량을 픽업해 최대 80% 충전하고 간단한 실내 청소도 해준다. 서비스 이용 금액은 2만원으로 토요일 제외,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예약할 수 있다. 서울 전 지역에서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아우디는 지난해 10월 순수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e-트론'을 출시하면서 해당 차량 한정으로 충전 대행 서비스를 내놨다. 현대차·기아처럼 앱을 통해 예약하면 고객이 원하는 시간대에 충전을 완료해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제프 매너링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아우디부문 사장은 당시 "전기차의 최대 약점은 충전에 쓰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충전 대행 시장까지 경쟁이 격화하는 이유는 전기차 확산세에 비해 충전소 수는 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기준 전기차 충전기는 3만3000여 기로 전기차 100대당 25기에 그친다. 미국의 충전기 수는 100대 당 185.3기로 7배에 달한다. 이로 인해 국내에선 전기차 완속충전기를 14시간 이상 점유하면 과태료 10만원을 물게되는 법안도 나올 정도다. 긴 충전 시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내연기관 차는 3분 내외면 주유가 완료되는 반면 전기차는 급속충전을 하더라도 20분~1시간 가량 걸린다.
충전 서비스를 통해 충성 고객을 확보하려는 전략도 있다. 충전 대행 서비스를 각 사의 앱을 통해 예약할 수 있게 만들고, 각종 구독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락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충전 대행 서비스는 수익을 낸다기보다 서비스를 더 확대하고자 하는 측면이 더 크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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