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꽃봉오리가 터졌을 때, 내 마음엔 사랑이 싹텄노라’고 노래한 슈만 가곡처럼 ‘아름다운 5월’이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반가운 소식이 밀려들었다. 피아니스트 김수연이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첼리스트 한재민과 피아니스트 박연민이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소프라노 김효영이 뉴욕 메트 콩쿠르에서, 아레테 스트링 콰르텟이 프라하의 봄 콩쿠르에서 각각 우승했다.
이른바 K클래식이 강세다. 한국이 클래식 음악 강국이란 얘기가 새삼스럽다. 문득 정경화의 이름이 떠오른다.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1970~1980년대에 이미 세계적인 연주가의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다. 데카, EMI, 도이치그라모폰, 워너 등 레이블에서 수많은 음반을 발매했다. 개인적으로 정경화의 음반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건 ‘콘 아모레(Con Amore)’다. 음반 제목은 ‘With Love’란 뜻의 이탈리아어다. 음반에 수록된 엘가 ‘사랑의 인사(Salut d’amour)’를 이탈리아어로 바꾸면서 붙였다. 음반업계에서는 이런 소품집을 이른바 ‘롤리팝’이라고 불렀다. 가볍고, 덜 부담스럽고. 초보자들도 이해하기 쉬운 종류의 음반이다. 음악적인 치열함을 갖고 레퍼토리를 하나하나 도전하던 정경화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첫 아이 출산 후 생각이 바뀌어 사랑을 듬뿍 담아 녹음에 임했다고 했다.
정경화는 1985년 10월 데카의 명 프로듀서 크리스토퍼 레이번의 자택인 서머셋 포드 애비에서 피아니스트 필립 몰과 함께 닷새 동안 녹음했다. 수록곡은 한 곡도 버릴 게 없다. 소품의 예술성을 높인 해석은 물론이고 꼭 들어봄직한 작품을 소개한 빼어난 선곡은 아직까지 쇼피스 앨범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사연이 많은 정열적인 여인을 그린 듯한 ‘집시 여인’과 곡에 푹 빠지게 하는 ‘사랑의 슬픔’, 크라이슬러의 두 작품으로 앨범은 시작된다. 폴디니의 ‘춤추는 인형’이 귀엽고 다정하게 연주되고 완벽한 기교 속에서도 촉촉한 총기를 잃지 않는 비에니아프스키의 ‘스케르초 타란텔라’가 지나면 앨범의 타이틀곡 격인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나온다. 정말 비범한 연주다. 곡을 밀도 있게 모아주고 자애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지금까지도 정경화의 단골 앙코르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시 엘가의 ‘변덕스러운 여인’은 여유롭고 따뜻하다. 차이콥스키 ‘감상적인 왈츠’는 슬프도록 아름답다. 크라이슬러 ‘서주와 알레그로’는 애절한 서주와 치열한 알레그로가 대비된다. ‘콘 아모레’를 OST로 쓴 MBC 드라마 ‘폭풍의 연인’에서 자주 흘러나온 두 곡이다. LP의 B면에 담긴 노바체크의 ‘무궁동’, 드뷔시 ‘아름다운 저녁’, 쇼팽 ‘녹턴’ C샤프 단조, 크라이슬러 ‘사랑의 기쁨’, 샤미나드 ‘스페인 세레나데’, 생상스/이자이 ‘카프리스’, 브람스 ‘헝가리 춤곡’ 1번 등도 하나같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연주들이다.
데카에서 열다섯 번째 음반인 ‘콘 아모레’는 정경화에게도 터닝 포인트가 됐다. ‘동양의 암표범’이라 불리던 바이올린 여제에게 부드러운 이미지를 부여한 이 음반은 세대를 넘어 사랑받을 불멸의 명연주를 담고 있다.
류태형 < 음악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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