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정책과 기후 위기 대처를 둘러싼 갈등, 주요 정치인의 부패 스캔들, 코로나19 위기관리 실패까지 겹치면서 정치권을 향한 독일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변화를 향한 기대와 열망이 뜨거운 상황이다. 서점가에도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독일 정치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보는 책들의 출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중순에 출간돼 한 달 만에 10만 부 가까이 팔린 화제의 책 《좌파 자유주의자(Die Selbstgerechten)》도 그런 책이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좌파당에서 원내대표를 지내며 좌파 정당을 이끌었던 사라 바겐크네흐트는 책을 통해 현실 정치의 모순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오랜 보수 연정의 피로감으로 지친 독일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진보 진영을 향해 매서운 회초리를 들고 있다.
책은 모든 것이 가치에 의해 평가되는 자본주의의 위세 앞에서 사람들이 일종의 ‘이념의 모순’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상과 생각은 분명 ‘좌파’인데 행동과 삶은 ‘우파’인 사람이 너무 많다. 자기 스스로 진보주의적 성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코스모폴리탄을 꿈꾸며 자유스럽고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싶어 한다.
자신의 욕심이 앞서다 보니 타인의 삶이나 지구 생태환경을 돌보지 못한다. 사회공동체를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정작 개인 삶의 문제에 천착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저자는 이렇게 생각은 진보적이지만 삶은 자유주의적인 사람들을 일컬어 ‘좌파 자유주의자’라고 부른다.
오로지 자신 주변의 삶에만 관심이 있고,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차별,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는 좌파 자유주의자들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경고한다.
좌파 자유주의자들은 저임금 여성 근로자의 근무 환경, 가난한 이민자 가정의 고통, 폭증하는 플랫폼노동자의 고단한 삶, 중산층의 붕괴와 같은 소식을 접하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여긴다. 성별, 학력, 고용형태, 건강, 사회적 신분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교묘한 차별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가운데 ‘젠더 갈등’이나 ‘계층 갈등’을 부추기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인기가 더 올라가고 있고 ‘소속감’이나 ‘연대’와 같은 구호를 외치는 정치인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정치의 목적은 저마다의 이익을 추구하고 싶어 하는 이기심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돌보며 지키는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라는 책의 주장을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마음에 새기면 좋겠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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