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미꾸라지, 목포 세발낙지, 일산 가물치, 슈퍼메기….’
2000년대 시장에서 이름을 날린 고수들의 별칭이다.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자 투자자들이 별명을 붙여줬다. 원금의 1만% 이상 수익을 낸 그들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롤모델이자 전설이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에게 잊혀져갔다. 전설의 투자고수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선물옵션 투자로 1000억원을 넘게 번 ‘압구정 미꾸라지’ 윤강로 전 KR인베스트먼트 대표를 만났다. ‘슈퍼메기’로 불린 선경래 지엔지인베스트 회장과는 전화통화로 근황을 들었다.
왜 프로그램을 개발하냐고 묻자 그는 “오랜 투자 끝에 ‘사람은 시스템을 이길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미국 시장에서 선물옵션 투자의 70%가 시스템 매매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국내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어야 경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윤 전 대표는 미국 나스닥 선물을 비롯해 금, 은, 원유 등 24개 선물옵션 차트가 하나의 모니터에 구현된 모습을 소개했다. 초단타 거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손매매(사람이 직접 투자하는 것)를 통해선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10여 개 변수를 입력해 최적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했다.
윤 전 대표는 투자의 다섯 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먼저 시장을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시장에 진입한 뒤에는 자금관리와 위험관리가 필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심리를 다스리는 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투자자들이 실현손익과 평가손익을 구분하지 않고 손에 쥐지 않은 수익을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변동성이 큰 장에서 사람보다 컴퓨터 시스템이 유리한 것도 이 같은 심리적 불안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최근 벌어진 코인 광풍에 대해선 “선물옵션보다 변동성이 큰 투전판이자 도박”이라며 “블록체인과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가장 허구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비트코인 투자를 직접 해보진 않았지만 절대 장기적으로 이길 수 없는 게임이 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는 “암호화폐 가격이 장기적으로 오를 것이란 믿음이 없기 때문에 단기 저점 매수를 통한 트레이딩이 불가피한 영역”이라며 “코인 투자도 차트를 보고 트레이딩해야 살아남을 수 있지만 개인들이 해내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암호화폐 투자를 통해 결국 수익을 보는 사람은 2~3%에 불과할 것이라고도 했다.
선 회장이 소유한 지앤지홀딩스는 지난해 11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주가지수선물옵션 거래를 통해 125억원의 이익을 냈지만 전체적으로 21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선 회장은 “드라마 제작사를 비롯해 소유한 건물을 모두 정리하고 있다”며 “선물옵션 투자도 이제 할 나이가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앞으로 주식투자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현재는 대부분의 종목이 너무 많이 올라 연내에는 투자하기 부담스러운 주가”라고 분석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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