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은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절망적인 세상을 그리는 디스토피아물이다. 인류는 2009년 이후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원인불명의 재앙을 맞았다. 미국은 뉴욕에 핵폭탄이 터져 폐허로 변했고 서울은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다. 2027년 주인공 테오(클라이브 오언 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와 국가 기능이 유지된 영국의 공무원이다. 어느 날, 테오의 전처이자 테러단체 지도자인 줄리안(줄리앤 무어 분)은 테오를 찾아와 흑인 소녀 ‘키’를 영국 밖으로 옮기는 작전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한다. 키는 약 20년 만에 인류에서 최초로 아이를 임신한 여성이다.
영화 속 영국과 같은 나라들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출산율을 끌어올리거나, 포용적인 이민정책으로 외국인을 자국 경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 유럽을 대표하는 저출산 국가였던 프랑스는 복지 확대를 통해 합계출산율을 유럽연합(EU) 내 최고 수준인 1.9명으로 끌어올렸다. 1960년대부터 출산율이 하락세인 미국은 이민자 문호 개방 덕에 지난 20년간 생산가능인구가 14%(2673만 명) 증가했다.
영화 속 영국은 두 가지 선택 모두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출산은 불가능하고,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난민은 시민들의 불안과 반감 속에 사회에 편입되기보다 수용소로 몰려 제거된다.
키의 존재는 영화가 제시하는 디스토피아의 해답이다. “세상은 끝났다”며 절망하던 테오는 임신한 키의 배를 보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찾는다. 테오와 일행의 숱한 희생 끝에 키는 무사히 건강한 딸을 출산한다. 난민을 학살하던 영국의 군인들도, 생존을 위해 테러와 분쟁을 이어가던 저항군도 아기의 모습을 보고 모든 싸움을 멈춘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키와 딸은 죽어가는 테오의 도움으로 인류를 되살리기 위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배에 올라탄다. 배의 이름은 투모로(내일)다.
영화 속 영국처럼 한국은 20년 가까운 기간 출산율과의 싸움을 이어왔다. 한국에서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한 것은 2005년이다. 한국은 이후 저출산 및 고령화 해결을 위해 13년에 걸쳐 무려 268조9000억원을 투입했다. 이 가운데 저출산 문제에 투입한 예산은 약 150조원. 결과는 처참하다. 지난해 국내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27만2400여명. 14년 전(43만 명)에 비해 37% 줄었다.
베커에 따르면 고소득층 및 선진국의 부부들은 임금 수준이 높다. 이들이 자녀를 낳고 기르면서 포기하는 시간과 자원은 저소득층·후진국 부부들의 시간보다 금전적 가치가 높다. 그 결과 교육 수준이 높은 선진국일수록 출산율이 낮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서는 베커의 이론에다 한국의 긴 평균 노동시간 및 여성의 출산 후 경력 단절 문제를 접목해 한국 특유의 저출산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했다. 한국 부부들의 출산 기회비용이 후진국은 물론 여타 선진국보다 높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저출산 대책에 대한 무용론이 일면서 전문가 사이에선 출산율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신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맞추고 거기에 맞게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도 이런 인식을 반영해 2018년 3차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발표하면서 기존의 출산율 목표(1.5명)에 중점을 둔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했다. 지난해말에 발표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출산 장려 정책에서 벗어나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출산 및 육아 지원과 함께 고령사회 적응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전범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② 육아에 따른 기회비용과 경력단절은 선진국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인데 합계출산율이 세계 꼴지를 기록하는 한국만의 특수성은 무엇이 있을까.
③ 정부가 매년 수십조원씩 재정투입을 해도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한국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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