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술을 말할 때면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던 르네상스 시대를 떠올리곤 한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그 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오래전 방문한 피렌체의 모습은 예술세계에 흠뻑 빠져들었을 정도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미켈란젤로와 보티첼리를 만날 수 있는 우피치 미술관, 인내와 창의적 예술품인 두오모 성당 등 르네상스의 걸작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그 많은 걸작은 금융 명가 메디치의 후원으로 탄생했다고 하니, 피렌체가 예술의 보고(寶庫)가 될 수 있었던 금융의 역할에 대해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스위스 취리히는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모여들어 유럽의 대표적인 금융도시가 됐지만, 예술의 도시로도 불린다. 150여 개 미술관과 전 세계 예술 애호가들이 찾아와 활동하는 공간을 마련해 그 명성을 쌓았다. 이런 화려함의 이면에는 탈산업화 시대의 아픔이 서렸으나, 그 고통을 치유하고자 할 때 금융과 예술의 만남이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산업시대의 유산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이제는 금융과 예술이 잘 어우러진 생김새로 거듭났다.
오늘날 금융은 그 역할에 대해 여러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디지털 전환 시대의 흐름에 맞춰 소비자 중심의 디지털 금융이 빠르게 진행되고, 녹색금융은 기후변화를 완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듯 포용금융은 소외계층이나 금융 서비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도 따뜻함을 전한다.
팬데믹 시대의 일상은 예술마저 거리를 두게 했지만, 예술가들은 창작의 고통을 인내하며 혼이 담긴 작품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다. 이처럼 금융도 끊임없이 경제의 피돌기를 자처한다. 모세혈관을 통해 몸 구석구석에 온기를 전하는 것처럼 진정으로 금융 사각지대를 보듬으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겼듯이, 예술은 늘 우리 곁에 머물며 행복의 속삭임을 전하는 것 같다. 유려한 필체로 심금을 울리는 문학작품이나 미켈란젤로, 고흐와 같은 거장의 미술작품이 아니더라도 예술의 세계는 상상 이상이다. 금융도 고유의 역할뿐만 아니라 예술과의 다양한 만남으로 행복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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