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택수요 억제로 집값 잡을 수 있을까

입력 2021-05-30 17:48   수정 2021-05-31 00:06

2017년 이후 현 정부가 주택 가격 안정화를 위해 추진한 일련의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주택 수요 억제에 있다. 취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인상 등 부동산 거래 및 보유와 관련된 비용을 올려 주택 구매 수요를 차단하는 것이 한 축이고, 주택 담보 대출 규제 강화를 통해 주택 구매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축이다.

과연 이런 주택 수요 억제 정책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전국 주택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중위매매 가격은 2017년 5월부터 4년간 44% 올랐고 서울 지역으로 한정했을 때 그 상승률은 무려 66%에 달한다. 대부분의 경제정책은 발표 후 정책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지금까지 나타난 주택 가격의 급등을 오롯이 주택 수요 억제 정책의 부작용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하지만 필자의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택 관련 세금 인상과 주택 담보 대출 규제 강화는 장기적으로도 집값을 잡을 수 없다. 여느 재화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집값은 주택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일치되는 시장 균형에서 결정된다. 주택 공급에 변화가 없다면 주택 수요 억제 정책은 집값을 하락시킬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주택 수요를 억제하고자 하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택 거래 및 보유에 대한 세금 인상으로 가계의 주택 구매가 줄어드는 대신 다른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 기업의 투자자본 조달이 용이해져 장기적으로 경제 내 자본스톡이 증가한다. 이렇게 자본스톡이 증가하면 여러 산업 가운데 노동보다 자본을 더 많이 사용해 생산하는 자본집약적인 산업이 수혜를 입고 상대적으로 노동을 더 많이 사용하는 노동 집약적 산업은 소외된다.

건설업은 생산 방식의 노동집약도가 가장 높은 산업 가운데 하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각 산업의 생산요소 중 노동의 비중을 나타내는 노동집약도를 계산한 결과, 2015년 기준 한국 건설업의 노동집약도는 89%에 달한 반면 제조업의 노동집약도는 54%에 불과했다. 이런 특성상 주택 관련 세금 인상으로 금융자산 투자가 늘어 장기적으로 자본스톡이 증가하면 건설업이 위축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즉, 주택 관련 세금 인상은 신규 주택 공급 감소를 유발한다. 필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런 신규 주택 공급 감소가 주택 관련 세금 인상에 따른 주택 수요 감소보다 더 커 장기적으로 집값은 오히려 상승한다.

주택 담보 대출 규제 강화 역시 장기적으로 집값을 낮출 수 없다. 주택 담보 대출 규제는 주택 구매 시 대출이 필요한 가계, 즉 자산이 적은 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주택 담보 대출 규제 강화로 이들의 주택 구매 수요와 함께 대출 수요도 감소하므로 장기적으로 시장 금리는 하락한다. 이때 자산이 많은 가계는 금리 하락으로 금융자산 수익률이 낮아지므로 주택시장으로 다시 눈을 돌리게 된다. 이는 대출 없이 집을 살 수 있는 현금 부자의 소위 ‘줍줍’ 양상으로 이미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렇게 자산이 많은 가계의 주택 수요 증가가 자산이 적은 가계의 주택 수요 감소를 압도해 집값이 상승하는 것을 확인했다.

결국 집값을 잡기 위해 현재까지 시행된 일련의 주택 수요 억제 정책은 장기적으로 집값을 높일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 변화에 동태적으로 반응하는 경제의 특성을 간과하고 정책을 집행한 대가는 턱없이 오른 집값에 한숨 쉬는 국민이 치른다. 최근 여당의 부동산대책특위가 내놓은 재산세 감면 대상 확대, 무주택자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 규제 완화는 이제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주택 관련 세금 인상, 주택 담보 대출 옥죄기가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환상 속의 그대, 이제 그 환상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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