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가 총 맞으면 나도 아프다"…메타버스 진화시킬 XR기술

입력 2021-05-31 17:22   수정 2021-06-01 03:03


1992년 ‘메타버스’란 용어가 세상에 등장했다. 주인공 ‘히로’가 가상세계에서 악의 무리를 무찌르는 내용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 나온 용어다. 히로가 사용하는 가상현실(VR) 기기의 사양은 이렇게 묘사된다. ‘2k 픽셀의 해상도, 1초에 이미지를 72번 바꿀 수 있는 72㎐ 주사율, 스테레오 디지털 사운드.’ 작가의 상상이었다.

작년 10월. 페이스북은 VR 기기 ‘오큘러스 퀘스트 2’를 출시했다. 제품 사양은 《스노우 크래쉬》에 나온 것과 비슷하다. 스테레오 사운드, 해상도는 2k, 주사율은 최대 120㎐까지 지원한다. 30년 전 상상은 현실이 됐다. 오큘러스 퀘스트 2는 현실 같은 몰입감이 현존 VR 기기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큘러스 퀘스트 2는 VR, 증강현실(AR) 등 확장현실(XR) 기술 진화의 시작일 뿐이다. 세계 메타버스 업계에선 VR 기기를 안경 크기로 줄이는 기술, 가상세계 경험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기술, 생각만으로 아바타(분신)를 움직일 수 있는 기술까지 선보이기 시작했다. ‘진정한 메타버스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XR 시장 도약시킨 오큘러스 퀘스트 2
로블록스, 제페토 등은 가상세계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의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PC와 스마트폰에서 캐릭터를 조작하는 수준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XR 사용자가 가상세계에서 실제로 움직이고 느끼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이 거리를 좁혀주는 핵심 플랫폼은 하드웨어(XR 디바이스)다.

진화는 시작됐다.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이 XR 시장에 뛰어들었다. 오큘러스 퀘스트 2는 독보적이다. VR 기기의 문제였던 가상세계 내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 오래 쓰면 눈과 몸이 피곤해지는 문제점 등을 해소했다. VR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도 크게 늘렸다. 리듬 게임인 ‘비트 세이버’, 슈팅 게임인 ‘하프라이프 알릭스’, 한강 등 실제 낚시터를 배경으로 한 ‘리얼 VR 피싱’ 등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VR 기기를 낀 채 여행을 갈 수 있고 3차원(3D) 영화도 볼 수 있다.

시장 반응도 폭발적이다. 오큘러스 퀘스트 2는 작년 4분기에만 세계에서 110만 대 팔렸다. 올해 판매량은 1000만 대를 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페이스북은 VR 기반 SNS인 ‘페이스북 호라이즌’도 개발 중이다. 페이스북 친구들과 VR 내에서 어울리는 서비스다.
환자 수술에도 쓰이는 AR
AR 분야에선 MS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VR이 현실을 완전히 차단한 가상세계를 보여준다면 AR은 현실 위에 홀로그램 같은 디지털 정보를 띄우는 방식이다. ‘포켓몬 고’를 떠올리면 된다. AR은 일의 능률을 높이는 용도로 활용된다.

MS의 ‘홀로렌즈 2’가 대표적이다. 벤츠, 벤틀리, 록히드마틴 등 기업들이 홀로렌즈 2를 활용하고 있다. 현장 직원이 눈으로 보는 장면을 홀로그램으로 사무실 직원과 공유해 원격으로 지시를 주고받는 식이다. 의료 현장에선 수술 중인 의사 눈앞에 환자 데이터를 홀로그램으로 띄우는 등 수술 도우미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을 대체할 ‘AR 안경’ 경쟁도 치열하다. AR 안경을 쓰면 스마트폰과 비슷한 인터페이스가 나타나고 음성인식과 손동작 감지 기술을 통해 통화, 문자 전송 등을 가능하게 해준다. 구글, 아마존, 삼성전자 등이 개발 중이다. 애플의 XR 시장 참전도 임박했다. 애플은 2022~2023년께 VR 기기와 AR 안경을 차례로 출시할 계획이다.

이 밖에 VR은 HTC, HP, 피코, 밸브 등이 주요 플레이어로 꼽힌다. AR 분야에서는 앱슨, 뷰직스 등이 다크호스다. 국내에선 삼성전자, LG전자 외에 라온텍, 맥스트, 버넥트 등이 XR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가상세계를 오감으로 느낀다
현실과 같은 가상세계를 구현하려면 ‘상호작용’ 기능도 발전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면 가상세계의 ‘나’도 같이 움직이고, 가상세계에서 느끼는 감각을 현실에서도 그대로 느껴야 한다. 핵심 기술은 ‘트래킹’이다. 지금은 눈과 손 정도의 움직임만 감지하는데, 이를 온몸으로 넓히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올 3월 출시된 HTC의 ‘바이브 트래커 3.0’은 손목과 다리까지 트래킹이 가능하다. ‘바이브 페이셜 트래커’는 얼굴 트래킹에 특화된 제품으로, 얼굴을 찡그리면 자신의 3D 캐릭터도 같은 표정을 재현한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주인공이 가상세계에서 물건에 부딪히면 조끼 모양의 슈트를 통해 아픔이 전해지는 장면이 나온다. 촉각 슈트도 상용화가 시작됐다. 국내 스타트업 비햅틱스의 ‘택트슈트 X40’이 그런 제품이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VR·AR 시장이 2019년 455억달러에서 2030년 1조5429억달러(약 1741조원)로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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