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1년여 앞두고 후보들의 테마주가 급등하는 건 유서 깊은 증시 행사와도 같다. 그러나 그 역사가 길지는 않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대선 테마주는 기껏해야 제지주, 광고주뿐이었다. 각 캠프가 인쇄물 혹은 TV 광고를 통해 홍보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테마주는 변모한다. 후보 개인이나 공약과 티끌만큼의 연관성만 있어도 테마주로 떴다. 인터넷이 활성화하며 개인투자자 간 정보 교류가 크게 확대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2002년 12월 치러진 16대 대선은 대선 테마주의 태동기로 불린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도이전 정책을 내세우며 충청권에 연고를 둔 계룡건설이 급등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여론조사 양자대결에서 처음으로 따돌렸다는 뉴스가 전해진 2002년 3월, 단 5거래일 동안 계룡건설은 45% 급등했다. 다만 이후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보이며 주가가 지지부진했고, 선거 날에야 큰 폭으로 올랐다.
대선 테마주가 판세를 키운 건 2007년 17대 대선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선 승리 이후 대운하 테마주인 이화공영 주가가 한 달 만에 두 배로 뛰었고, 대선 1주일 전엔 전년 대비 3096%나 급등했다. 2012년 치러진 18대 대선은 테마주가 크게 힘을 못 썼다. 2011~2012년 증시가 유럽발 위기로 급랭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2017년 19대 대선에선 노 전 대통령 주치의 배우자가 최대주주란 이유로 문재인 테마주로 묶인 우리들휴브레인이 급등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한 2016년 9월 들어 주가가 급등, 단 7거래일 만에 55% 뛰었다.
당선 약 2주 전부터 서서히 거품이 꺼지고 원래 주가로 돌아가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화공영은 이 전 대통령 당선 약 2주 전 정점을 찍고 급락하기 시작했고, 우리들휴브레인은 그보다 앞선 한 달 전부터 하락세가 시작됐다. 증시 전문가들은 대선 때마다 펀더멘털과 무관한 테마주장에 편승하지 말라고 권고하지만 한탕을 노리는 투자자들은 오늘도 대선 테마주에 손을 댄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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