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준 게임빌 대표(현 컴투스·게임빌 이사회 의장)는 2013년 10월 5일 경쟁사였던 컴투스를 홀로 찾았다. 컴투스 인수 발표 하루 뒤였다. “회사가 경쟁사로 넘어가는 돌발상황에 혼란스러웠을 컴투스 임직원과 직접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는 게 그의 기억이다. 송 의장은 “새 사장이 아니라 동반자라는 마음으로 직원 한 명 한 명과 대화했다. 글로벌 시장을 같이 개척하자고 설득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듬해 컴투스는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를 출시했다. 게임은 얼마 안 가 87개국 모바일 게임 매출 1위를 차지했다. 한국 모바일 게임 최초로 누적 매출 1조원도 달성했다. ‘서머너즈 워’는 글로벌 게임 IP(지식재산권)산업 성공의 ‘전설’이 됐다.
게임빌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아이폰이 몰고 온 모바일 혁명 덕을 톡톡히 봤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게임빌에는 피처폰 시장이 전부였다. 이 시장에서는 모바일 게임을 선탑재하는 사례가 많아 휴대폰 제조업체와 이동통신사를 상대로 힘겨운 영업을 해야 했다. 송 의장은 “2007년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도 해당 지역 이동통신사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모바일 게임 시장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게 기회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2011년 출시한 ‘에어펭귄’은 당시 모바일 게임의 대명사였던 ‘앵그리버드’를 글로벌 1위에서 끌어내렸다. 게임업계가 다시 한 번 게임빌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물론이다.
2012년에는 국내 모바일 게임사 중 처음으로 분기 매출 100억원을 넘어섰다. 같은 해 매출 426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모바일 게임업계 경쟁자였던 컴투스를 추월하고 1위에 올랐다. 당시 게임빌의 해외 매출 비중은 58%에 달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성장세를 이어가던 중 복병을 만났다. 국내외 대형 게임사들이 모바일 게임 사업을 강화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2013년 2분기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38% 감소했다. 경쟁업체에 밀리지 않기 위해 외부 게임 유통을 늘렸고, 마케팅 비용은 증가했다.
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컴투스의 개발진을 확보해 게임 개발력을 높일 것이라는 긍정적 분석이 나왔다. 반면 두 회사의 사업 모델이 모바일 게임으로 비슷하고, 컴투스의 개발 인력이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당시 게임빌과 컴투스의 주가는 모두 52주 신저가로 추락할 정도로 자본시장의 반응 역시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송 의장은 개의치 않았다. 게임빌 개발 조직의 핵심이던 이주환 상무(현 컴투스 전무)를 컴투스 게임개발본부장으로 발령냈다. 컴투스의 게임 개발 조직을 제대로 챙기겠다는 의도였다. 당시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를 연동하는 방식이 대세였다. 하지만 송 의장은 두 회사의 역량을 믿고 글로벌 시장으로 독자 진출을 결정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2014년 내놓은 ‘서머너즈 워’는 2019년 2월 글로벌 다운로드 1억 건을 돌파했다. ‘서머너즈 워’는 e스포츠로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11월 ‘서머너즈 워’의 e스포츠 대회를 세계 130만 명이 온라인으로 지켜봤다. 15개 언어로 생중계됐다. 2019년 스웨덴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양국 간 친선을 위해 스웨덴의 카를 구스타프 16세 국왕과 ‘서머너즈 워’ 친선 대회를 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하기도 했다.
‘서머너즈 워’ 성공으로 컴투스 매출은 2010년 280억원에서 지난해 5089억원으로 10년 새 18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은 80%에 달한다. 올 4월에는 ‘서머너즈 워’ IP를 활용한 첫 게임인 ‘서머너즈 워: 백년전쟁’도 내놨다. 출시 3일 만에 누적 매출 50억원을 달성했다.
송 의장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도 유명하다. 컴투스의 신성장 기반을 대부분 M&A로 다졌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데이세븐, 노바코어, 티키타카스튜디오 등 여러 장르의 유망 게임 개발사를 잇따라 인수했다. 작년에는 국내 1위 온라인 바둑 서비스 ‘타이젬’을 운영하는 동양온라인도 사들였다.
송 의장은 올 3월에 그동안 맡았던 컴투스와 게임빌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대신 양 사의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글로벌전략책임자(GSO)를 맡아 개별 게임 사업보다 전략적 투자와 글로벌 성장 전략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지난달에는 컴투스의 이례적인 투자가 업계에서 화제였다. 인터넷은행 케이뱅크에 500억원을 투자해 지분 2.1%를 확보했다. 송 의장은 “게임과 인터넷은행은 모두 디지털 기술력이 결집한 미래 산업으로 같은 운명체라고 봤다”고 말했다. 컴투스는 게임과 금융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사업 기회를 발굴할 계획이다.
발레·농구·철인 3종…문화스포츠 '든든한 후원자'
송 의장은 지난해부터 국립발레단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국립발레단은 60여 년 역사를 이어온 한국 발레의 상징. 그는 “거장 강수진 감독의 리더십과 여러 무용수 및 스태프의 열정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발레 공연 기회가 줄어든 상황에도 송 의장의 후원은 이어지고 있다. 컴투스도 2017년부터 회사 차원에서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문화·예술 관련 후원을 해왔다.
송 의장은 기초문화·예술 분야 발전이 궁극적으로는 게임산업의 성장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흔히 선진국은 문화·예술 수준이 높은 국가라고 말한다”며 “이제 한국도 콘텐츠를 수출하는 등 높은 문화·예술 수준을 갖춘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말했다. 이어 “게임산업 역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 의장은 스포츠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컴투스는 올해로 3년째 ‘3 대 3 농구 프로리그’를 후원하고 있다. 야구 꿈나무 육성과 국내 야구 발전을 위해 관련 기관과 행사도 지원하고 있다. 또 비인기 종목인 철인3종 경기를 후원했다. 송 의장은 대한철인3종협회 이사로 활동했다. 해마다 직접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컴투스는 지난해 사회공헌 사업으로 코로나19 관련 후원에 집중했다. 지난해 3월 대구동산병원의 의료진 및 관계자를 위해 2억원을 후원했다. 해외 코로나19 취약 지역 돕기에도 적극적이다.
■ 송병준 의장은
△1976년 대구 출생
△1996년 서울대 벤처창업동아리 초대 회장
△1998년 서울대 전기공학부 졸업
△2000년 게임빌 설립(대표)
△2013년 컴투스 인수(대표)
△2021년 컴투스·게임빌 이사회 의장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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