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을 정의할 때 혁신이란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로켓배송에서 출발한 그들의 꿈은 약 1600만 명(올 1분기에 단 한번이라도 거래한 활성고객 기준)이 사용하고, 거래액만 24조원(작년 말 기준)에 달하는 글로벌 e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으로 현실화됐다.
쿠팡은 전국 100여 곳의 물류센터와 수만 대의 배송 차량을 첨단 인공지능(AI)을 통해 손발을 움직이듯 통합 관리하는 디지털 물류를 구현했다. 배송에 관한 한 아마존도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미국 기술·경제 전문매체인 패스트컴퍼니는 ‘2020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서 쿠팡을 아시아·태평양 지역 2위로 선정됐다.
소비자 편익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오늘의 쿠팡을 만든 원동력이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창업자)은 소비에 관한 한 거의 모든 것을 쿠팡이란 플랫폼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매년 수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이 쿠팡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존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 모델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전통 기업들이 이익을 추구한다는 의미의 영리(榮利)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면, 쿠팡은 오히려 ‘영리(零利)’를 내세운다. 이익을 남기지 않고 번 돈의 대부분을 새로운 사업에 투자한다는 뜻이다. 김 의장은 창업 11년차에 쿠팡을 뉴욕증시에 상장시킴으로써 ‘계획된 적자’라는 모순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쿠팡이 기존 기업의 문법 중 유일하게 따르는 건 끊임없는 고용 창출 한 가지뿐이다.
복잡해 보이는 쿠팡만의 테크놀로지에 가려져 있지만, 쿠팡의 생존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소비자가 소비 행위를 하면서 불편을 느끼는 곳이 있다면 영역 불문하고 쿠팡의 투자 대상이다.
로켓배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6년 시작된 한국의 e커머스는 상품을 온라인에서 ‘클릭’만으로 구매하는 것에 집중했다. ‘주문 물건을 언제 받을 수 있는가’라는 정작 중요한 행위는 택배회사에 맡겼다.
쿠팡은 당일 배송을 구현하기 위해 자체 물류시스템 구축을 결단했다. 2014년 2월 로켓배송의 전신이 된 와우딜리버리 프로젝트에 착수했을 때의 일화는 쿠팡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프로젝트팀을 구성하면서 쿠팡이 정한 원칙은 ‘기존 택배나 물류와 관계된 일을 한 경험이 없는 다양한 조직의 주니어 직원으로 구성한다’였다. 기존 택배업을 답습하지 말고, 소비자 관점에서 서비스를 새로 설계하라는 의미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쿠팡의 물류망은 전국 30여 개 도시에 약 100개 센터와 거점으로 펼쳐져 있다. 2025년까지 수도권 외 지역에 7개 대형 물류센터를 건설해 전체 인구의 99%가 쿠팡 물류 관련 시설에서 11㎞(7마일) 이내 반경에 들어오도록 하겠다는 것이 쿠팡의 목표다.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쿠팡의 전략은 수면 아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PB(자체 브랜드)를 통한 가격 조절이 대표적인 사례다. 쿠팡마켓플레이스에서 거래되는 애완견 사료 가격이 갑자기 상승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쿠팡은 PB 사료 공급량을 늘림으로써 대형 판매상 간 보이지 않는 ‘담합’ 가능성을 원천봉쇄한다.
배송 및 물류 노동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근로에 대해서도 쿠팡은 기술을 통한 진보를 지향한다. 물류센터 내 근로자 동선까지 세밀하게 조정할 정도다. 최소한의 노동력을 투입하면서도 상품 이동을 빨리 하기 위해 쿠팡이 새로 연결한 컨베이어벨트 길이만 약 60㎞다.
쿠팡의 AI기술은 라스트마일 배송 프로세스를 최적화하고 불필요한 육체노동을 줄이는 데도 활용된다. 해당 지역을 처음 담당하는 배달맨 쿠팡친구가 숙달된 동료와 비슷한 수준의 업무 효율을 낼 수 있도록 AI 기술이 배송하는 상품 전체 주소지를 바탕으로 운전하기 좋은 최적의 경로를 계산해 주는 식이다. 쿠팡카에 실리는 모든 상품의 주소지를 주문과 동시에 분석한 뒤 하차되는 시점을 계산해 개별 상품이 어떤 차량에 실릴지까지 지정해 준다. 쿠팡의 행보는 국내를 넘어 해외로 뻗는 중이다. 첫 번째 상륙지는 싱가포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밀집형 도시에 최적화된 쿠팡의 디지털 물류 기술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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