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인재 집합소 쿠팡이 깬 3가지 장벽…언어·위계·공간

입력 2021-06-02 15:17   수정 2021-06-02 15:20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창업자)의 사내 호칭은 ‘범’이다. 직원들은 뒤에 ‘님’자만 붙여 부른다. 강한승·박대준 공동대표를 비롯해 쿠팡의 모든 직원은 특별한 직급 없이 사내에서 자신이 정한 닉네임을 사용한다.

다국적 기업인 쿠팡의 독특한 기업 문화다. 약 7000명의 임직원(배송·물류 근로자 포함 3월 말 기준 5만4274명)은 한국 미국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근무한다. 투안 팸 쿠팡 최고기술책임자(CTO)의 거주지는 미국 실리콘밸리다. 그가 지휘하는 수백 명의 정보기술(IT) 엔지니어도 마찬가지다. 쿠팡에 입사했지만 본사가 있는 한국에 들어와 거주하지는 않는다.

미국 중국 인도 네팔 스위스 룩셈부르크 미얀마 베트남 등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모여 있다 보니 다른 기업에서 보기 힘든 특별직군까지 생겼다. 쿠팡 통역 전문가다. 국내 기업과 기관을 통틀어 통역 전담 직원이 가장 많다.
“직원들의 창의를 현실로 만든다”
2010년 창업한 쿠팡은 11년차 신생 기업이지만 단숨에 24조원(작년 말 기준)의 거래를 창출하는 e커머스(전자상거래)업계의 데카콘기업이 됐다. 전문가들은 성장 비결 중 하나로 쿠팡 특유의 조직 문화를 꼽는다. 언어와 공간의 제약 없이 다양한 국적의 인재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조직은 국내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위계와 서열에 기반한 전통적인 기업 문화는 아예 처음부터 쿠팡에 발붙이지 못했다.

쿠팡이란 거대 조직에 대한 외부 시선은 크게 두 가지다. 갑자기 커지면서 불안 요소가 많을 것이란 추정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의혹이 대부분이다. 기존 기업을 분석하는 틀로는 쿠팡의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쿠팡은 수년째 이어지는 수천억원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신규 사업에 도전 중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은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원들 스스로 문제점을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는 조직 문화다.

‘미니 CEO’로도 불리는 PO(product owner) 직군을 운영하는 것이 쿠팡의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00명가량인 PO들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기존 사업의 기능과 성능을 개선하는 일을 맡는 책임자급 직원이다. 일반 대기업이 신규사업팀 등 별도 조직을 꾸려 새 사업을 발굴하는 데 비해 쿠팡은 각 부서에 PO를 심어두고 현업에 근거한 신규 사업을 찾아낸다.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PO들은 개발자 등 사업화에 필요한 자원을 배당받아 CEO처럼 운영한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엔 연간 사업계획이나 연말 정기 인사가 없다”며 “직원 상당수가 외국인이다 보니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할 때 한국적 관행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설의 검증’이 신사업 탄생 원리
쿠팡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데이터와 실험이다. 쿠팡은 자신들의 사업을 끊임없는 ‘가설의 검증’이라고 부른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MVP(minimum viable product)-최소 기능 제품’이란 개념도 도입했다. 쿠팡은 새로운 서비스를 전사적으로 확대하기 전에 반드시 MVP로 만들어 빠르게 검증한다. 가설이 먹혀들면 더 확대하고,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접는 방식이다.

쿠팡이츠의 확대가 대표적이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장악한 배달앱에서 후발 주자이던 쿠팡은 ‘단건 배달’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택했다. 가설은 간단했다. 소비자는 맛집 음식을 따끈한 상태 그대로 빠르게 받길 원한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서울, 경기 성남 판교 등 수도권에서 데이터를 축적해가며 조금씩 영역을 확장했다. 쿠팡이츠를 맡고 있는 한 임원은 “예전에는 배달하지 않던 판교의 냉면 맛집에 주문해봤는데 사장님이 ‘최선을 다해 배달 음식도 만들었으나 혹시 음식이 식당에서 먹을 때와 다르더라도 양해해달라’는 쪽지와 함께 30분 만에 배달이 왔다”고 초기 경험을 소개했다. 이 임원은 “우리가 원하던 전국 맛집 사장님들이 쿠팡이츠를 택한다는 걸 알게 돼 엄청 기뻤다”고 말했다.

쿠팡은 사내에 ‘실험 플랫폼’도 구축했다. 팸 CTO는 작년 12월 쿠팡의 첫 개발자콘퍼런스인 ‘리빌(reveal) 2020’에서 “매년 수천 개의 실험을 할 정도로 쿠팡엔 실험 문화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며 “모든 기능을 설계하고 내놓을 때 엄격한 비교 테스트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 결정은 쿠팡의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어떤 기술을 선정하기에 앞서 ‘거래량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코로나19 사태 혹은 예상치 못한 장애로 24시간 안에 시스템에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경우에도 대처가 가능한가’와 같은 질문을 먼저 던지고 이를 해결할 기술을 검토하는 식이다.

종이 상자를 없애고, 단순한 비닐 포장으로 친환경 배송을 구현한 것도 데이터와 수많은 실험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쿠팡 관계자는 “기존 택배사와 e커머스업체들은 물건을 옮기는 과정에서 사람이 이리저리 던질 수밖에 없어 종이 상자를 버리기 어렵다”며 “쿠팡은 주문 즉시 전국 100여 개 물류센터에서 정확한 순서대로 제품을 포장 및 배송하기 때문에 종이 상자를 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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