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외교부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이날 비밀이 해제된 기록물 14건을 공개했다. 기존에 공개한 문건 중 삭제된 부분 등을 포함해 총 53쪽 분량이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1979년 12·12 군사반란 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던 1980년 8월 5일까지의 기록 중 일부다.
공개 문건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당시 최 전 대통령을 ‘무기력한 대통령’으로 평가했다. 1990년대 중반에 공개될 당시에는 삭제됐던 표현이다. 반면 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군부 내에서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며 사실상 실세로 보인다는 평가가 포함됐다.
군사정권을 일으킨 전 전 대통령을 대하는 미국 정부의 딜레마도 드러났다. 문건에는 1980년 3월 13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전 전 대통 간 면담 내용과 함께 국무부가 “전두환이 이번 만남을 올리브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며 “(미국이) 그의 높아진 위상을 수용하고 당신(미 대사)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한 내용이 포함됐다.
한편 1980년 방한한 레스터 울프 미국 하원의원이 “우리는 한국군의 안정을 바라며 지휘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당신을 돕겠다”고 하자 주영복 당시 국방장관이 “나는 군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날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한 내용도 포함됐다.
주 전 장관은 12·12 군사반란 이후 국방부 장관에 임명된 인물로 이후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진행된 12·12 및 5·18 수사 과정에 적극 협조해 전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인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진술에서 자신이 허수아비 장관이었다고 고백한 것이 이번 국무부 자료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는 “12·12사태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한 군부 세력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며 “실질적 지휘체계가 12·12 이후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전두환이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신호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국무부가 지적한 것”이라며 “전두환과 접촉하면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미국 정부의 메시지도 계속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번 비밀 문건 공개는 5·18 관련 진상규명을 위해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른 한국 정부의 요구를 미국이 수용하며 성사됐다. 지난해 43건에 이어 이번에 14건이 공개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나 지휘체계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국이 아직 23건의 문서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정치적 파급력이 큰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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