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사람은 많은데 살 사람이 적은 ‘수요 과점’ 시장도 존재한다. 가입자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한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와 이들에게 영상 콘텐츠를 공급하는 방송사의 관계가 수요 과점 시장에 해당한다. 국내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는 10개 안팎이다. 반면 콘텐츠(채널)를 제작해 공급하는 방송사는 150개가 넘는다. 이 경우 힘의 우위는 콘텐츠를 공급받는 플랫폼에 있다. 특히 국내 유료방송 플랫폼은 이동통신 3사 중심의 소수 메이저 사업자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상태여서, 협상력의 쏠림이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방송사는 플랫폼에 밉보이면 채널 편성에 불이익을 당하는 등 피해를 볼 수 있어 플랫폼사와의 콘텐츠 가격 협상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더욱이 유료방송 시장에는 기이한 관행이 있는데, 이른바 프로그램 ‘선공급 후계약’이다. 가격을 먼저 흥정한 뒤 상품을 납품하는 것이 일반적인 거래 관행이지만, 유료방송 시장에서는 프로그램을 우선 공급하고 방송이 끝난 연말에 가격을 협상한다. 플랫폼으로서는 이미 장사가 끝난 프로그램의 가격을 후하게 쳐줄 유인이 없다. 방송사는 협상에 쓸 지렛대를 원천 봉쇄당한 셈이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쏠린 협상력이 만들어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시장 구조가 이렇다 보니 시청자가 내는 수신료 중에서 방송사 대비 플랫폼사가 가져가는 몫이 절대적으로 높다. 인터넷TV(IPTV)의 경우 2019년 기준 수신료의 70%를 가져갔다. 음원 플랫폼이 35%, 웹툰 플랫폼이 30~50%, 영화 플랫폼인 극장이 45%(한국 영화 기준)를 가져가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 우리가 힘들게 지키고 있는 콘텐츠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방송사들은 유료방송 플랫폼에서 받는 프로그램 사용료로 콘텐츠 제작비의 3분의 1밖에 충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모자라는 3분의 2를 광고나 협찬 등으로 채우면서 제작한다. 미국 방송사들이 제작비의 100% 또는 그 이상을 플랫폼사로부터 프로그램 사용료로 받는 것과 대비된다.
방송사와 유료방송 플랫폼은 공생관계다. 유료방송 플랫폼은 좋은 프로그램에 대해 합리적인 대가를 지급해 방송사들이 제작비 부족을 걱정하지 않고 더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양질의 콘텐츠는 더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아 유료방송 생태계 전체를 더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장 환경을 조성해 경쟁력 있는 K콘텐츠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가 갈등하는 사이에도 콘텐츠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자칫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시장을 넘겨줄까 걱정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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