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볶이·쌈장·부대찌개…日 동네슈퍼 접수한 K푸드

입력 2021-06-03 17:08   수정 2021-06-11 15:20


일본 오사카시 니시요도가와구 지부네 지역의 대형 슈퍼마켓인 헤이와도 프렌드마트에 들어서면 찐만두와 떡볶이, 고추장, 식초 음료 같은 한국 식품을 모아놓은 진열대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간사이 지역에서 165개 점포를 운영하는 상장사 헤이와도가 이달부터 열고 있는 ‘한국식품페어’다.

헤이와도 홍보담당자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히자 한국 식품 수요가 늘어났다”며 “고객이 여행과 외식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한국 식품 특별전을 하고 있는 슈퍼마켓 체인은 17곳에 달한다.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일본 최북단 와카나이의 사이조, 최남단 가고시마의 슈퍼밸류규슈까지 전국 각지의 슈퍼마켓에서 한국식품페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지금 일본 열도는 한국 음식에 푹 빠져 있다. 고추장 쌈장 등 장류와 라면사리 라볶이 짜장볶이 등 분식류, 양념치킨 순두부찌개 부대찌개 등 가정간편식(HMR)까지 한국의 마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한국 식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진 도쿄 신오쿠보의 한국 식품점이나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의 대형마트에서 구할 수 있었던 품목이다. 지금은 동네 슈퍼와 편의점에서도 온갖 종류의 한국 식품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편의점 체인인 미니스톱은 지난 3월부터 대상그룹의 가정간편식 안주인 곱창과 돼지두루치기까지 팔고 있다. 일부 한류팬이 호기심에 먹어보는 수준을 넘어 보통의 일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요리가 됐다는 의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식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을 제안하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도쿄지사와 한국 식품회사들이 일본 유통기업을 찾아다녀야 했다. 지금은 일본 전역의 슈퍼마켓 체인들이 한국 식품회사에 “한국페어를 개최하자”며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최근의 한국 음식 열풍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로 대표되는 4차 한류와 코로나19가 합쳐져 만들어진 현상이란 분석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난 일본인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한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aT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 가공식품의 일본 수출 규모는 2억7489만달러(약 3061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5% 증가했다. 1분기 CJ그룹과 대상그룹 일본법인의 매출은 626억원과 229억원으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동안 K팝 아이돌그룹이 주도한 한류는 산업 측면에서 일본의 10대 소녀팬들이 공연을 감상하고 음반을 사는 데서 그친다는 지적이 많았다. 반면 최근의 한류는 주요 소비층이었던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까지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국 요리와 안주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가정간편식과 장류 수출이 급증한 것도 집에서 한국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어보려는 일본인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와 올해 1분기 가정간편식 수출액은 1882만달러와 2416만달러로 각각 68.7%, 28.4% 증가했다. 고추장 수출도 45.1% 급증했다.

한국 식품회사에는 ‘한국 드라마에 등장한 배우를 섭외해 그가 회식 장면에서 먹었던 안주를 광고로 찍고 싶다’는 일본 유통회사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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